옛날 어느 왕국에 몹쓸 전염병이 돌고 있었습니다.
서로 시기와 질투로 대적하고 싸움만 커져가는 병이 돌았습니다.
왕은 그 백성들의 서로 대적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파 슬퍼했습니다.
왕국에서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예언이 있었습니다.
“어떤 전염병이 왕국을 위기에 처하게 될 때가 온다.
그 위기에서 왕국을 구해 낼 방법은 하나뿐인 왕자의 희생으로 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리고 부활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왕국의 하나뿐인 왕자를 백성들의 손에서 희생시키는 것.
그것을 알게 된 왕자님은 왕께 아뢰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저 백성들을 너무 사랑합니다.
저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알려주어 시기 질투 죄악 속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습니다.
저의 간청을 들어 주세요. 나의 영혼을 받아 주세요.
백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서 당신의 사랑.. 그 위대한 사랑을 전할게요.
아버지께 배운 그 사랑을 나눠 줄게요“
그 왕자님은 어딜 가시든 추운 곳이든 어두운 곳이든... 매일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살라고.. 그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성들이 왕자님을 해치고 말았습니다.
하늘도 울고 세상도 울었지만 왕자님은 기도했습니다.
“저들을 용서해주세요....”
백성들은 그제야 알았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을.
자신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셨단 걸

시간은 점점 흐르고 그 기억은 멀어져 가면서 우리들은 다시 그 희생을 잊어갑니다.
하지만 그 희생을 잊지 
그분의 사랑 그 위대하신 사랑과 희생을 배우고 다시 오실 그 날을 기다립니다.

 

이 노래를 바탕으로해서 이야기를 재구성했씁니다.

www.youtube.com/watch?v=oAbmtpwt7FQ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커버입니다.

www.youtube.com/watch?v=ZGpncrq-VxY

 

대표이미지 출처 : http://blog.daum.net/swk3951/284

본문 : 요한복음 9: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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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9:35-41)

의사에게 치료를 받기위해서는 그 병을 먼저 인정하는것이 순서입니다.

질병을 인지하여 진료를받고, 치료가 시작됩니다.

어떤 물리적인 충격이든, 내적 건강상의 문제든, 정신질환이든.

하지만 죄에대해서 인정하지 못하거나 치료의 필요성에대해서 부정한다면 의사도 치료를 해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죄를 주님앞에 먼저 인정함으로 시인하고 나의 우상들을 고백하며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죄를 너무나 사랑하고

주변사람의 인정과 성취감과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라는 우상을 너무나 사랑하는 죄인입니다.

이러한 마음들로 인해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순간순간의 죄악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저는 너무나 나약하고 힘없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주님의 자리를 뺏을순 없습니다.

우상들은 언제나 나를 배신하지만 주님은 주님의 계획에 나를 넣으시고 인도하시며 참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니까요

주님만이 나의 참된 소망이자 새명이자 길입니다.

나의 모든 우상들을 무너뜨리시고 그위에서 저를 이끄소서...

 

민호기목사님의 십자가 전달자 찬양이생각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VBdALUiWMc

www.youtube.com/watch?v=5nFokmxVkXQ

 

호머 베절릴 헐버트 (Homer Bezaleel Hulbert, 許轄甫 허할보)

(한국어 이름 : 헐벗, 흘법, 허흘법, 할보, 허할보)

1863126~ 194985

미국의 감리교회 선교사, 육영공원 영어교수(한국 최초 근대 명문귀족 공립학교), 항일운동가.

 

 

고종으로부터 을사늑약의 무효친서를 헐버트 선교사에 전달하고 세 번의 특사를 받을 만큼 영향력 있는 항일 운동가였던 그는 고종의 최측근에서 보필과 자문 역할과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 역할. 헤이그 비밀밀사 지원에도 적극 동참.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인으로 당선. 안중근 의사에게 존경받는 인물.

 

1863126일 미국 버몬트주 뉴헤이번에서 태어남.

아버지(캘빈 헐버트) : 미국 버몬트 주 미들베리 대학교 총장 칼빈 헐버트 목사님,

어머니(메리 우드워드 헐버트) : 다트머스 대학교 창립자, 인도 선교사의 자녀.

자녀 : 32

 

 

1886(고종23, 한국나이 24)

주변 열강국가들의 압박으로 불안하기 시작한 조선은 미국에 육영공원에 교사를 파견해달라는 요청으로 길모어와 벙커 등과 함께 조선에 입국하여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함.

그는 자비로 한글 개인교사를 고용하여 한글을 배워 3년 만에 한글로 책을 저술.

 

1888(26)

제중원 학당에서도 교직을 담당하기 시작함.

9월 미국으로 잠깐 귀국하여 메이 한나와 결혼 후 다시 조선으로

 

1890(28)

일제의 침탈 행위를 목격하여 조선의 국내외적으로 관심가지며 자주권 회복 운동에 헌신하기 시작

 

1891(29)

최초의 순 한글 지리사회 총서 교과서 <사민필지> 저술

한글을 극찬하며 한자보다 한글 사용을 독려

여름에 아펜젤러 선교사님과 모펫 선교사님 동행하여 선교 정보 수집을 위한 평양 방문

(평양에서 석탄 광산의 실태 파악)

재정문제로 육영공원 축소 운영에 의해 교사 사임 후 미국 귀국

 

1893(31) - 선교의 시작

고국 귀국한지 2년 만에 미국 감리교회 소속으로 선교사 파송 준비과정을 마치고 다시 한국 복귀하여 선교활동 본격 시작.

감리교 출판부(삼문출판사) 책임 담당.

배재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침

 

1895(33)

2년간 휴간했던 영문 월간지한국소식을 다시 발행 시작

영문 소설 텬로력뎡을 한국어 번역판 최초 출판.

108일 을미사변 때에 언더우드와 에비슨과 함께 고종의 침전에서 불침번

1896(34)

장남(쉘던 헐버트) 출생

1897(35)

아들(쉘던 헐버트) 병사

5월 조선정부와 고용계약으로 학생 수 50명 되는 한성사범학교의 책임자

관립영어학교에서 영어 교사

정치적으로는 고종을 최측근에서 보필, 자문역할과 호위역할을 병행

또 외교의 대화 창구 역할. 고종의 가장 신뢰받는 외국인중 1

 

1900 ~ 1905(38 ~ 43)

고종의 특사로 미국 방하기 전까지 중학교 교사 신분으로 학생들에게 일본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사회활동 전개

 

1901(39)

영문 월간지 <Korea Review> 발행

 

1902(40)

<한글 (The Korean Alphabet)> 논문 저술

금속활자, 거북선 등에 대한 한국 문화 관련 논문 발표.

대표적으로 <대한제국 멸망사 (The Passing of Korea)>

 

1905(43)

대한제국의 외교권 강탈하는 을사늑약 사건 후 이 늑약에 대한 불법성과 무효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자주독립을 주장

을사늑약이 무효하다는 고종의 친서를 미국의 대통령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실패.

하지만 그 외의 열강국가들에게 그 부당함을 알렸음.

 

1907(45)

고종의 밀서를 받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장에 비밀 특사 파견에 큰 공헌을 함으로써 제4의 특사로 불림.

이 일로 일본에서 헐버트의 활동을 알게 되고 조선에서 추방하게 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서재필과 이승만 등 미주 독립 운동가들에게 적극 지원

미국 각지를 돌며 일본제국의 만행을 퍼트리고 한국의 분리 독립성을 호소

7월 헤이그 평화클럽에서 일본의 부당함을 질타 후 미국으로 귀국

 

1908(46)

미국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에 정착, 스프링필드 훼이스 회중교회에서 목사 안수

미국 전역과 전 세계의 각종 회의와 강좌에서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며 한국의 분리 독립에 관한글 저술

 

1918(56)

파리 강화회의를 위한 독립청원서를 여운홍과 함께 작성.

1919

3.1 운동 후에는 이를 지지하는 글을 서재필이 주관하는 잡지에 발표

미국상원 외교위원회에 일본의 만행 고발

 

1942(80)

워싱턴D.C에서 열린 한국자유대회에 참석

(1919년과 1942년 미국에서 개최되었던 독립운동후원대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5170

 

1944(82)

한국무제연구회에서 간행하는 한국의 소리라는 책자에선 루스벨트 대통령이 을사늑약 직후 고종황제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동양의 역사가 바뀌었고, 미국이 친일 정책을 썼기 때문에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고 주장

 

194985일 소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한국은 독립되었고, 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된 다음 해(42년만) 방한.

방한 후 1주일 후 병사.

811일 최초로 외국인 사회장으로 연결식을 거행 후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힘.

(그의 첫째 아들 쉘던이 2살 때 사망하여 이미 양화진에 묻혀있었음)

헐버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으로 떠나며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길 원하노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두 가지 소원은 통일된 한국을 보는 것 고종의 내탕금을 찾는 것

(내탕금 : 임금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던 기관)

 

195031일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독립장)을 추서.

전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지냈던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과 함께 조선 말기 '조선을 구하기 위해 활동한 대표적인 서양인'으로 손꼽히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2014109일에 한글 보전과 보급에 헌신한 공로로 대한민국정부에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B%A8%B8_%ED%97%90%EB%B2%84%ED%8A%B8]

 

 

 

 

부인

이화학당에서 음악을 가르침.

외국인 자녀들을 자신의 집에서 가르침.

제중원에서 환자들을 간호함.

볼드윈 교회(, 동대문교회)에서 담임 목회

헐버트 선교사님과 함께 외국 서적의 번역작업과 외국 홍보활동, 기사 번역 작업을 함께 함.

1908년엔 제자 오성근과 함께 <대한역사>라는 한글 역사 교과서 출판.

하지만 1년 후 일제에 의해 모두 몰수되어 불태워졌다.

 

업적

육영공원에서의 교직생활

조선으로부터 영어 교사를 파견해달라는 요청에 의해서 첫 입국.

 

고종의 독립자금을 위한 비자금 추적 (1909)

그의 죽을 때 까지 이루지 못했던 그의 소원이자 고종의 명령.

조선에서 일본의 부당한 식민 지배를 세계에 알리고자 헤이그 특사를 파견 했을 때, 일본에 이 계획이 발각되어 실패되고, 일본에서는 이를 문제 삼아 고종을 황제에서 폐위시킨다.

고종은 독립운동을 위하여 비자금으로 독일의 상하이 주재은행에 예치해둔 금, 현금 (242,500) 대신 찾아 달라고 헐버트에게 요청한다.

하지만 헤이그 특사 이후 독립운동을 압박하기 위하여 추적하던 일본에게 먼저 발각되어 서류조작을 통해 일본에서 먼저 인출 해버린 뒤였다.

 

한글의 전파의 노력과 헌신

조선의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한글을 배웠던 헐버트는 한글의 우수성을 깨닫고 한글전파에 많은 업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인 최초의 한글 교과서(지리) <사민필지>

<한글 (The Korean Alphabet)1,2> 논문 저술

그의 저서 The Passing of Korea(대한제국 멸망사)는 조선 말기 3대 외국인 기록 중 하나로 꼽힌다.

 

한글의 띄어쓰기 시작

헐버트 선교사님은 서재필 선생님과 주시경 선생님과 함께 독립신문 창간

독립신문은 한글의 띄어쓰기를 시작하고 적용했던 최초의 한글 신문.

주시경 선생님과 함께 한글을 연구하다 띄어쓰기와 마침표 찍기 도입

문자사에서 한글보다 더 간단하게 더 과학적으로 발명된 문자는 없다.’라고 <The Korean Alphabet ||>논문을 통해 한글을 극찬(1892)

이외에도 여럿 논문 저술

 

해외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을 전파

교육자이자 언론인이고 했던 그는 한글로 된 교과서 외에도 영문으로 된 '한국의 역사''대한제국멸망사(The Passing of Korea)' 등을 통해 미국 대중들이 한국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고종의 특사로 해외파견 2

(1.고종에게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내용이 적혀져있는 고종의 친서를 받아 동맹국인 미국의 대통령(루스벨트)에게 전달을 하려했지만 미국은 당시 친일 분위기로 만남의 요청이 무시당함.)

 

<대한제국 멸망사>를 읽다보면 당시 조선인보다, 현재 한국인보다 우리나라를 더 잘 아는 외국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성경의 시작은 이혼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말은 래리 크랩 교수님이 쓰신 하나님의 러브레터의 서문에서 언급되었다.

하나님은 자녀들과 변질되지 않고 오직 순수 그 자체의 사랑을 원하셨지만,

인간은 욕심으로 인해 그 순수가 깨어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깨어져버린 순수함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 그 자리엔 죄가 가득 채워지게 된다.

죄. 하나님의 되고자 하는것.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어떤 무엇으로 인해 가려 버리는 것.

그렇다. 그 가정이 깨지게 되는 시발점이 바로 그것이다. "죄"

하나님과 자녀들 사이에는 죄라는 것이 들어오는 것이 극도로 싫어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자녀의 잘못으로 인해 서로의 관계가 파국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한 변질되어버린 사랑,

깨어진 사랑으로 인해 그 가족이 깨어져 버린다.

하지만 하나님이 깨버리신 가정이지만 이것은 포기하기 위한 이혼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바로 세우기 위한 무너뜨림이었다.

 

이미 죄를 인지하고 죄의 맛 들린 사람은 죄를 잊지 못한다. 지금의 내 마음처럼...

하물며 그때의 아담은 안 그랬을까? 그럴 리가..

하나님은 이미 인간이 죄의 맛을 봤기 때문에

그때의 그 상태 그대로 그 순수했던 사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렇게 깨어져버린 가정의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그렇게 이혼에서부터 시작되는 흔하지 않은 세상 유일무이한 사랑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

죄로 인해 깨진 사랑이고 가정이지만

그 주안에서 사랑으로 피어나는 가정을 다시금 꾸리기 위하여 인간들에게 아들을 내어주시고 죽이시고

성령을 주셔 은혜를 부어주신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존재라 다시금 죄앞에서 무너지고 무너진다 죽기전까지.

인간의 힘으로는 그 죄라는 놈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

오늘 나의 모습처럼. 마음먹고 돌아서면 다시금 무너지는 그마음때문에 그 독한 자아와 욕심때문에...

우리힘이 아닌 내가, 내자아가 죽고 그 자리에 주님이 오셔서 역사하심으로 인해

그 사랑이 살아나고 에덴동산에서 깨어진 또 한명의 관계가 이어지기 시작한다. 

 

래리 크랩 교수님의 두꺼운 책속에 몇자 안되는 내용속에서 깊은 은혜를 깨달아 책을 덮고 기록합니다.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의 제자"라는 책으로 제자 훈련을 받고 있어서 책 인용을 좀 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을 라틴어로 "Credo" = 심장을 내어드리는것.

 

곧 온 마음과 생명을 주님께 받칠 수 있겠는 가? 에 대한 단어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해서 그 모두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심장을 온전히 주님께 받칠 수 있는가?가 나의 믿음을 대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생활 속에서 가장 소중한것을 주님께 내어드릴 수 있는 겠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No라고 답변을 한다면 그것은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과 신념의 사람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의 사람은 주님앞에 나의 심장. 곧 나의 모든 소중한것과 나의 생명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신념의 사람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중에서 편한것만을 골라서 나의 신념으로 지켜 지내는 사람인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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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장 33~37절

33.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부터 나오게 되는 다윗가 사무엘의 차이점.

사무엘은 골리앗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며 두려워 떨었지만 어린 청소년이엇던 다윗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에게 분노를 표출 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골리앗 앞에 당당히서서 믿음(물맷돌)을 던져 골리앗을 원킬 시켜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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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5장 4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사람들은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격고 고난을 격습니다.

이 책에서는 환절기를 비유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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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에 꽃샘추위가 닥쳐왔을 때 날시가 매섭다고 해서 다시 겨울 준비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온과 상관없이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새학기를 준비합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계절의 원칙에 따라 봄은 온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안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진리를 정말 믿는다면 처한 환경이 겨울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항상 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글로 주님은 이 책을 통해 저의 마음을 한차례 더 때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시련이오고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걸까?라는 의문을 시작하여 의심이 의심을 낳는 무한증식에 빠지게되고

그렇게 시험의 늪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그런 하찮은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또한 종교인이 되는 것이겠지요.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확증을 하셨다고 하십니다.

혹여 마음속에 잇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신다면 십자가사건과, 지금 우리인생속에서도 함께 일어나고잇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한것을 되새기며 다잡으시길 바랍니다.


이 단원을 통해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인생을 살아왔는지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Q.나는 지금껏 무엇으로 인생을 살아왔습니까?

A.내 생각, 신념, 걱정, 부모님의 기도..

예수님을 믿는다곤 했지만 역시 나의 신념 뿐이었다.


 

그리고 신앙인들은 자기들의 신앙 상태를 선택의 기로에 서서 수준이 드러나게 됩니다.

 

 

블로그 개설하고 일년동안 방치하다가 묵상일기로 첫 글을 씁니다.

처음과 끝이 예수님이어야하고

그 예수님께 다가가기위해 십자가를 지고

그십자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야하는것임을 고백합니다.


창세기 37장~ 

하나님의 계획의 이야기를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로 요셉 이야기가 먼저생각난다.

어렸을때 한나라의 2인자 총리가 된 요셉을 생각하며

요셉처럼 되고자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모든 연단과정을 뛰어넘어버리고

"우와...나도 요셉처럼되고싶다..."라는 마음을 가졌다.

근데 이 마음을 좀 더 파고들어가보면

"우와... 나도 한나라의 총리되고싶다.."일것이다.

그 근거는 그 "요셉이 되고싶다"라는 마음 속에는 

그 낯선곳으로 형들에게 배신을 맞아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갖혀버리는 연단의 과정은 모두 뛰어넘어버리고

결과만을 바라보고 그러한 마음을 품었을 것일테니까.

문득 요셉의 말씀을 보면서 생각 난것은 요셉의 일대기를 보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장면이 단 한장면도 안나오는데

요셉은 훗날 자기가 애굽의 2인자가 될것이란것을 알고 있었을까?

물론 어렸을때 꿈을 통해 예언을 보기는 했지만 그게 총리가 되어 

다른 형들뿐만이아니라 만백성의 절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햇을것이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형들의 배신이 훗날의 후손들이 모래알보다도 많게 키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었단 것이다.


나의 상황과 나의 고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던 내자신의 모습이 생각난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상황을 허락하셨을까"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상황 가운데에 두셨나요?"

물론 그 상황이 지나고나면 그 모든 순간이 연단의 과정이었고, 그 기간을 견디고나면 은혜가 있다는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는 그것을 알지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해버린다.

그래서 하나님게 한번더 비수를 꽂는다.

"하나님....이러실꺼면 진작에 알려주시지 그랬어요.. 괜히 하나님을 원망했잖아요"


만약 형제들의 배신에 의해서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저 "애굽의 2인자 요셉의 후손"들이라는 이유로

요셉을 알지못하는 바로로 바뀌기전까지 애굽이라는 인큐베이터 속에서 수를 어마무시하게 불려나갔으니까..

아마 요셉이 노예로 팔리지 않았다면 (당시 부족간의 서열다툼에 의해서) 이렇게 민족을 이루는데에는 시간이 더욱더 오래걸렸을 것이다.


그럼 한단계 더 연관지어서


(출14:10~11))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만약에 출애굽기 14장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홍해가 그렇게 갈라질줄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모세와 여호와를 원망했을까?



(출15:22~25)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만약 출애굽기 15장에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물을 허락하실것을 알았다면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을까?

시내산에서 모세가 40일동안 있을 때 하나님이 모세가 살아있다는것을 알려 주셨다면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끼?


물론 그 결과를 알지 못한다.

이미 역사는 지나왔고, 지금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주님 왜 저에게 진작에 알려주시지 그러셨어요.."라는 말을 좀더 달리해보면


"주님... 진즉에 제 인생의 계획을 좀 스포일러 해주시지 그러셨어요.."와 같다고 느꼈다.


우리는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 당하는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화를내기도한다.


그러면서 내 인생에 대해서는 스포일러 해달라고하는 이중적인 모습인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더이상은 내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를 요구히지 않았던거같다.


더이상 원망도 하지않을것이다..


추가로 무슨일을 하던 나의 힘이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주님의 도우심으로 하는 것임을 항상 자각하며 일을 해야하는것을 습관으로 만들어가야 할것이다. 잘안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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