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탈 때의 집중해야할 것은 나무가 아니라 길 이어야한다.

스키를 탈때 나무에 집중하면 절대 나무를 피할 수 없고

그 숲의 길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놀랍게도 길이 보일것이고 나무는 알아서 피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동일하다고 느꼈다.

인간의 '뇌는 부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연구결과처럼

'생각 하지말자'이라고 결심하면 청개구리처럼 그 생각이 더 강렬하게 올라온다.

그냥 그것을 받아들이면 잠잠해지고, 그 생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죄를 분석하기보다,

주님께로 생각을 더 집중하기 시작하면 더이상 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공략법,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로 집중 하는 것이다.

 

이미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안타깝지만 돌이킬 수는 없다.

그 실수를 피드백으로 삼고 미래에 집중해야한다.

상황은 바뀌지않을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내 마음은 변화할 수 있다.

우리가 주님께로 집중하기 시작한다면 더이상 죄는 우리의 짐이 되지않고 자유로울 수 있게 되는것이다.

 

머리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의 실수가 있다면 받아들이자.

죄로부터 눌리지말고 인정과 사랑으로 맞서야한다.

인정은 "그래 나 잘못했어.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더더욱 주님께 집중을 할거야"

사랑은 "그럴수있어. 괜찮아. 우린 인간이야 지극히 정상이고, 주님은 그런 모습마저도 사랑하시는 분이셔 나도 나를 사랑하자."

(또 실수한 대상이 있다면 그 대상에게도 진심으로 사죄하고, 그 사죄하는 마음으로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내 사랑아 죄에 눌리지 말거라. 너의 죄는 내가 다 가져갈테니 죄에 눌리지 말거라.
내 자녀야 나는 그런 너의 모습도 이해하고, 사랑한단다. 그런 너를 내가 만들었잖니
내 아들아 내 딸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란다.
죄의 기억은 떨쳐내고 나와함께 자유하지않겠니?
쉽지 않은것 안다. 하지만 나와함께라면 무엇이 어렵겠니 내가 다 해결해줄텐데
걱정하지말고 나에게 맡기거라
너가 어디에있건, 무엇을하건, 무엇을 먹건, 무엇을 듣건 너는 내 자녀고, 사랑중에 사랑이란다.
그러니 너는 나와 함께 하는것에만 집중을 해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렇다. 죄를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것, 책임질 수 있다고 믿는 것부터가 교만이었다. 

죄는 내가 감당할 수 없다. 책임질 수도없다. (물론 현실적인 뒷감당은 내가 하겠지만..)

죄에대한 책임을 주님께 맡기고 나는 그저 주님께 집중하자.

내가 할일은 그것뿐이다. 주님께 집중하고, 나의 할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나의 필요는 주님이 알아서 다 해주실것이다. 

그러다보면 나는 알아서 성장할테고, 견디다보면 주님이 풀어주시리라 믿는다.

오늘을 살자. 더 밝아질 내일...그언젠가를 기약하며

그렇게 다시한번 가슴에 오지않는 천국소망을 꿈꾼다.

 

누군가가 강연에서 이 말을 했던 것을 다시한번 되새긴다.

"나의 시선과 시각과 시점을 주님께로 맞추면 주님의 때가 시작이 된다"
-[이준희 대표]의 더크로스처치 일터특강-

나의 시선과 시각을 주님께로 맞추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면 주님의 역사를 체험할것이다.

 

김명선 간사님의 시선이라는 곡을 더 깊이 체험하는 묵상의 시간이 되었다.

 

또 생각이 올라올것이다. 나는 벗어날 수 없다.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차라리 대화를 하자.

나에게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사랑해주고, 보듬어주자.

그리고 이해하자....용서하자. 사랑하자.

사랑해

더보기

남들에게 좋아보이기위해 괜찮은척 했다.
괜찮아보여야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여야했다.
힘들지 않은척
슬럼프에 빠져도 빠지지않은 척
또 나 자신에대해 솔직하지 못했고, 나와 내 주변을 속이고 있었다.
이유는.... 소중한 사람을 잃기 싫다는 욕심과 두려움이 아닐까
그렇게 또 다시 속인 결과는... 처참했고, 절망이었다.
그 두려움이 모든것을 앗아갔고, 또 다시 지옥을 보게 한것이다.

왜..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할까
내 마음이 병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방치한채로....괜찮다고 생각한 것일까

 

"잘 지내고있냐?"

누군가가 형식적으로 물어보는 안부를

형식적으로 넘기지말고 진지하게 성찰을 해보라는 신호로 인식하자.

난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것일까?

 

괜찮아?

무심코 던지는 이 말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평소에는 괜찮은 척 바쁘게 살아가다가

괜찮냐는 한마디에 울컥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에는 무심코 넘겼을 그말이

그 한순간에 그동안 괜찮지 않았던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동안 너무 무거운 짐을 메고 살아왔던것을.

너무 큰 부담감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까지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탈진해 쓰러지기 직전까지 기다려야하니까

그전까진 자신마저도 그 상태를 알아차리긴 어려울테니까

 

하루를 마치고 안식처에 들어와

누군가는 맥주 한 잔,

누군가는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고,

누군간 침대 속에 파묻혀

그 하루를 감당하기 위해 무장했던 긴장들을 모두 털어내며

자신에게 되묻는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괜찮아?"

단순히 "오늘 하루도 고단했다..."로만 끝내버릴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랬고, 저것은 저랬으면...하는 배움으로 만들자.

 

그리고 괜찮지 않다고 느낄땐 더 솔직하고, 민감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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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에 순종이 없었다.
그냥 삭제가 되어있었고, 존재할 자리가 없어져 있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되어버렸다.
꿈이 내가 되어버렸고, 내 옆사람이 되어버렸고,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이상... 빛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계속 싸웠다.
"이해하자...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고, 감당해야 할 일이다."라는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주님 내가 왜 그래 야해요?,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거예요?
내 모든 세상을 무너뜨릴 만큼 큰 죄인 거예요?
난 이해가 되지 않아요 뭐가 그렇게까지 잘못인 건데요?
제가 책임을 지면 되는데 왜 저한테 기회조차 허락해주지 않으시는 건데요?"
이라는 마음으로 반항심이 가득했고, 원망으로 가득 메웠다.

그 상태는 부모님과의 관계 단절하는 마음과 얼추 비슷했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나면 그 이후부터 평생을 가시가 되어 날 괴롭힌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나에겐 그 가시가 불순종이었던 것이다.
불순종의 결과가 관계의 단절이었고, 가장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지옥을 맛보게 된 것이다.

죄는 그 자체로 죄일 뿐인데 내 기준대로 죄의 무게를 측정하고 있었다.
또 그 측정된 죄의 무게를 통해 주님과 타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 이 정도면 괜찮죠? 주님도 이해해주시는 거죠?"
내가 내 멋대로 주님을 판단하고, 타협하고,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내 안에서 깽판을 치며 나를 병들게 하고 있었고, 주님과 멀어지게 하고, 죄악 가운데로, 지옥 가운데로 나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넙죽 엎드리기로 했다.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넙죽 엎드린다.
이제 다시 내 마음에 주님의 자리를 만들고 순종을 드린다.
회개한다. 가슴 찢어지게 회개한다.

죄송합니다 주님.
내가 나된것을 죄송합니다.
죄악 앞에서 주님을 욕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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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 (jiieum 지음, 규장)

'포이에마'라는 단어를 들어본적 있어? 알고있는 사람들은 다들 한국어로 '걸작품'으로 알고있을거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걸작품이고, 하나님의 손에서 태어난 아주 귀하고 아름다운 자녀라고들 하시잖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던것 같기도하고 와닿지 않았을 때가 많았어
"내가 걸작품이라니 허구헌날 실수하고 사고치는데, 뭐하나 제대로 하는것이 없는데 뭐가 걸작품이란거야?"

그래..솔직하게 와닿지 않았다기보단 거부감에 가까웠지.

위 책의 그림에서 말하고있는 화자가 딱 나의 마음이었지.


그런데도 주님은 꾸준하게 나한테 "그래도 너는 걸작품이야"라고 하시더라고 그게 어떤 방식이건 간에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았어. 지금도 딱히...잘모르겠어 믿고있는건지 아닌건지
그런데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생각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있는 모든 이들이 생각을 하고있을 것이고, 과거에 그런 시절을 거쳤던 이들도 있을거야

내가 왜 그렇게 느낄까 이유를 느끼지 못했어.
그 이유를 요새 읽고있는 책에서 나에게 알려주었어
"그거 니 기준이야"라고.
실수하고, 사고치고 그런 허다한 일들.. 그것으로 내가 보잘것 없다 느끼는것? 그 모든것이 '나의 기준'이라는 것
걸작품은 자기자신이 판단하지 않아. 그 작품을 만든 누군가가 판단하고 있었던거야

알고보면 그 모든게 '교만'인데 말이야.

나를 만든 건 내가 아니야. 주님께서 우리 부모님을 통해 탄생시키시고 나의 인생을 계획하셨지

그리고 주님은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전심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시래

그렇게 날 설계하시고 만드신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

"야 내가 널 만들었는데 니가 뭔데 널 평가하냐? 너의 가치판단은 니가 하는게아니라 널 만든 내가 하는거야 짜식아.

아름답고 존귀하게 만들었어. 그런 너는 나에겐 매우 귀한 자녀고 꿈이고 계획이야. 그러니 나 믿고 같이 가자"

 

그래....당장은 힘들어도 주님은 항상 날 좋은곳으로 인도해주셨어... 그 과정은 눈물 콧물 싹다 빼버리시지만 말이야..

나도 언젠가 믿겨지겠지

 

하나님을 알게되서 정말 다행이야.

그 분 덕분에 오늘의 힘을 낼 수 있고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까.

물론 오늘은 힘들거야. 내일도 힘들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약속하셨어

언젠가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을 밝혀 주실것이라는 약속.

그 약속을 믿고 굳게 기다리자.

오늘의 힘이 내일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그 성장의 미래의 빛이 되기까지 

 

 
김명선 - 오늘의 힘, 내일의 소망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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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 책은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모습을 보고 써진 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강해진다.

매우 작고 연약한 믿음. 아는건 많았지만 그만큼 따라주지 않았던 믿음

아는게 많았던 만큼 더더욱 이끌긴 힘들었던 마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믿기도 힘들었고, 오히려 상처만 늘어났다. 그렇게 더욱 연약해져만 갔다.

(먹다 남은 전....ㅋㅋㅋㅋㅋ너무 적절한 표현이다.)

그로인해 힘든일이 있으면 더 크신 계획에 대한 기대보다는 원망이 앞선다.

나를 향한, 주님을 향한 원망.

딱 나의 상태 그대로를 매우 잘 표현 한듯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정말... 싫었고 혐오스러웠다.

내가 건강하고 잘될 땐 내탓, 일이 잘 안풀리고 힘들땐 주님탓이었던 내 모습이

시도때도없이 흔들리고 또 힘들땐 나 힘들다고...당장 해결해달라고 하는 모습까지도..

뻔히 그것이 해로운것인줄을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마저도 주님께선 귀히 여기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너와 내가 함께하고있지않느냐?

너가 날 내쫒았을때보다 날 욕하고 원망하더라도 너가 날 바라봐주길 원한다.

그래야 교제도하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갈수 있잖니 그렇게 해야 너가 살 수 있어. 넌 내가살렸잖니"

 

오늘도 마음속의 내적갈등으로 한참을 전쟁을 치루는 중이다.

그 무엇이 됐든, 해서는 안되는 이성적인 마음과 하고싶다는 감정적인 두 마음.

하지만 오늘도 또 다시 참고 견뎌내야할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고 다시금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 오늘을 버틸 힘을 주시고 내일을 기다릴 희망을 허락해주세요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뿐이지만
주님이 언젠가 보여주셨던 모든 것을 밝히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을 다시금 볼 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버팁니다.
그리고 다시 그날이 올때는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주님의 손을 놓지않게해주세요.
무슨일있어도 주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 (jiieum 지음, 규장)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3)

처음에 이 구절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왜 복이있는 것일까

심령이 가난하면 자꾸만 헛된 것으로 채우려고 하지 않을까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행복하다는데 왜 심령이 가난한 것일까

 

그런 의문은 말씀을 들여다보는 초점이 잘못된 것이란걸 깨닫게 되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그 모든 나약함을 주님께 맡김으로 의지한다.

나 하나만으로 이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기에 너무 힘든것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기에

그냥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맡기는 것이다.

 

나의 경건해야하는 생활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과물'이라는 모습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로인해 나의 마음은 변질이 되었고 주님으로부터 귀를 닫았다.

그렇게 마음에 사랑이 줄어들었고, 미움과 다툼이 증식해가고 몸이 뻣뻣해지고 마음이 굳어져갔다.

주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주님이 그 '모든 것'이엇다는 것을

주님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우쳐버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새 마음을 얻어 살아가는 주제에 내 힘과 내 손으로 세상을 살아가려 했다.

뼛속 깊숙한 곳까지 교만이 자리잡은 것이었다.

 

다시 심령이 가난해졌다.

그로 인해 다시 주님을 보게 되었다. 쉽진 않지만 주님을 의지한다.

나의 흔드심은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드는 연단의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주님 진심으로 교만을 끊어내시고

죄를 죽음보다 두렵도록 해주세요. 죄를 증오하게 해주세요

죄로 인해 주님과 더 멀어지는 것을 미워하도록 해주세요.....

다시는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 (jiieum 지음, 규장)

최근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생겨서 책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한때 나의 삶이 되었던 소중한 이와 마지막으로 서점에 가서 산 책 저자 "jiieum"의 <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라는 책은 이 책을 살 때 주님께서 나의 이 상황을 예비하신 것일까..
한 챕터 한 챕터 마음에 비수가 되어 날아 꽂힌다.

저자가 주님인양 나를 직접 보시면서 책을 쓰신건가 라는 생각이 들만큼 소름이 돋았다.
또 그만큼 더 죄송스러웠다. 좀 더 일찍 읽어봤다면.... 후회하기전에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정확하게 주님의 자리를 빼앗은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혼자 살만해지니까 더이상 주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고 딜레마는 점점 더 깊어져만 가고

그로인해 주님을 더더욱 문 밖으로 내몰게 되었다.
그 자리는 오직 주님을 위한 자리 주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다.

다른 누군가가 감당하게 되었을 땐 너무 큰 부담을 안게 된다.

하지만 그 주님의 자리를 다른 무언가에게 내어주고 자리를 뺏긴 주님은

문 밖에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우셨을까...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난 주님을 잊고 지냈는데 주님은 날 잊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내 마음에 빈자리가 생길때까지 계속 하염없이 문 바로 앞에서 계속 그자리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 마음의 빈자리가 생겼을 때 또 다시 나에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셨다.
밖에서 묵묵하고 한결같이 문이 열릴때까지 기다리고계셨던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고민을 해봤다.

이유는 여러가지일것이다.

  • 신앙의 목적이 나였던것 -> 내가 건강할땐 의지하지 않는 점
  • 주님이 함께하지 않는 다른 무언가로 하루의 전부를 가득 채웠던 것
    (스푼, 사랑, 연애, 게임, 
  • 삶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나의 재미를 채워줄 자극을 찾았던 것.

이 습관들로 내가 병들게 되었다는걸 잊지말자...

그리고 나의 병든 습관으로인해 주변까지 병들게 했던 그 상처들까지...

 

아침 출근길 독서 한챕터

나의 잘못된 말버릇을 딱 짚어 지적해준다.

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 (jiieum 지음, 규장)

나의 불평은 무엇일까 잠깐 고민해봤다.

  • 다른사람을 쉽게 평가하고 판단하는것
  • 나의 가치 또한 낮게 평가하고 자책하는 것
  • 매일의 아침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며 오늘도 어김없이 밝아진 하늘에 짜증내는 것
  • 반복된 일상속에 감사함을 찾기보다 재미없다며 실망하고 더 자극적인것을 찾는 것

너무 많다... 이 또한 굳이 고쳐야하나 했다. 이 또한 교만이었다.

이제는 깨달았다. 이 모두를 감사로 덮지 않는다면 나의 행복과 삶의 질을 갉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치해둔다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져서 불평과 불만 속에서 지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읽은 본문에선 이런이야기가 나왔다.

나 또한 공통된 불만을 가지던 내용이었다.

"나는 대체 왜 이모양일까요?"

나 자체가 불만이라는 것

이 습관이 모든 불만의 근원이자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나 자신에게 "나 자신"으로써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면

주변에 모든 현상들의 불만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주님은 "'네가 너여서' 기뻤으면 좋겠어 내가 너를 그렇게 지었기 때문이야" 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나는 나로써 받아들였다 생각했지만 아직 그러지 못한 부분들이 훨씬 많았다.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원망도 많이했다.

그 원망으로 매일밤 눈물속에서 나를 죽이고 또 살고싶어 발버둥쳤다.

누군가가 관계의 균열은 관계의 대상에 대해 다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것 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그런 균열을 저지르게 된것이다.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안다는 교만을 저질렀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데 받는 것을 '은혜'라고 했다.

모든 것이 은혜였는데 나에겐 모든 것이, 나 자신조차도 짐덩이였다.

은혜가 은혜인줄 몰랐다.

 

나는 나로써 이 또한 은혜로 받아들인다.

가장 어려운일이지만 받아들여야만 나와, 주님과, 내 이웃을 건강하게 사랑하게 될것이다.

나를 사랑함으로써 건강하게 사랑하고, 건강하게 살아가자

나를 인정함으로써 모든 관계로부터 더욱 밀접해지자.

 

주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나에게 먼저 실천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니 주님을 알아가자. 그리고 그 주님에게 내가 누구인지 여쭤보자.

 

주님, 난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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