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5장 1~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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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가 예수께 묻다(마 27:1-2, 11-14; 눅 23:1-5; 요 18:28-38)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예수를 넘기다(마 27:15-26; 눅 23:13-25; 요 18:39-19:16)

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선동이 참 무섭다.

기득권 세력들의 무게있고 힘있는 목소리로 무리를 선동하여 죄없는 사람을 최악의 범죄자로 만드는건 순식간이었다.

빌라도는 그 실정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고, 예수님이 자신의 입장을 변론했다면 얼마든지 들을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님은 아무런 대꾸도, 변호도 하지 않으셨다. 그냥 묵묵히 그 상황을 피하지 않고 견뎌내셨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일이 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도망하지 않으신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정이 많은 만큼 또 선동에 굉장히 약한 민족이다.

무슨 연관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정과 선동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로 생각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나라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난 오지랖을 빼놓을 수 없다.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함께 마음속 깊이 공감해주며 관계를 맺는다.

이전에 묵상했던 누군가가 아파한다고 주변사람이 그 환자를 예수님까지 데리고 왔던 내용은 우리나라의 오지랖과 그리 거리가 멀지 않게 느껴졌다.

나쁘진 않은데....좋은데....독이 될 때도 적지 않다. 생각보다 상당히 많다.

그리고 그 오지랖이 오늘은 누군가를 죽이는 화살이 되었다.

그들의 오지랖은 누군가의 행동에 대한 선악을 재판하는 자리였고, 그 영역은 어리석은 인간이 감당해낼 자리는 아니었지만 민족의 뿌리 깊은 성향인 오지랖을 이용한 선동을 이용하여 선악의 재판을 개최하였다.

오지랖이 없었다면 예수님이 사람을 죽이건, 살리건 아무 관심도 없었겠지.

 

이웃을 나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이웃을 나와 동일시 여기면 안될 것이며,

이웃의 행동 또한 나의 좁은 식견 속에 가두어 선악을 논하면 안될 것이다.

그저 그냥 그의,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그를 한번 더 이해해주고 사랑해주자.

 

누군가가 미울때 항상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말이 있다.

"그사람의 역사, 배경을 알게 되면 미워하기보다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주님.

주님의 사랑안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오늘 저에게 주신 사랑을 깊이 되돌아보며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해치는 자들 마저도 미워하기보다 그들을 이해하고 품으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학대를 견뎌내셨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을 오늘 다시한번 깊이 느낍니다.

그 사랑을 먼지로 잊혀지기보다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되도록 해주세요.

아직까지 내 마음이 많이 어리고, 좁게느껴집니다.

하지만 많은 경험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더 큰 세상을, 더 큰 주님을 느끼게 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저의 이 여리고 교만하고 어리석은 마음 주님께서 잘 헤아려주시고,

내일 또 다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이며 주님을 더욱 닮아가도록 해주세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마가복음 8장 22~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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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새다에서 맹인을 고치시다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베드로의 고백,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심(마 16:13-28; 눅 9:18-27)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4)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1.이스라엘 사람들의 오지랖 (22~26)

이스라엘 사람들도 참 오지랖은 넓다.

같은 마을 사람이라는 이유로 맹인을 예수님 앞에 데려다가 치료해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이 한두번 나오는것이 아닌데...

그 당시 그 사람들은 그 아픈 사람을 예수님 앞에 데려다 놓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을까

단순히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주님이 그 사람을 낫게 하신것을 아닐텐데..

그 과정 속에서 하신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렇게 주님 앞에 치유의 역사를 기대하고 아픈 사람을 데려다 놓는데 나는 내 친구를 위해 그럴 수 있을까..

 

2.베드로의 고백의 의미 (27~38)

이 시대에도 선생, 랍비 등 자신을 현자라고 칭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지금 시대에도 자신을 그렇게 높이는 사람도 많다. ㅇㅁㅎ라던가....ㅂㅇㅅ라던가... 그외 등등..)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그들 중 또 다른 한명의 랍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와중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다고 고백한다.

(다른 본문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까지 고백한다고 나와있다.)

베드로는 이 말의 뜻을 아직까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고백하고있다.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이스라엘 희망이 되었던 예언이 구원자가 오실것이라는 것을 유대인이라면 어렸을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왔었고, 베드로는 눈앞에 있는 예수님이 그 구원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언을 잘 알지못했다.

예수님이 구원자인것을 알지만 그가 생각하는 구원은 우리의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닌 로마의 식민지배로부터의 구원으로 착각하고 나섰다가 예수님한테 된통 혼난것이다.

 

예수님을, 구원의 역사를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계산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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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어쩌면 나도 그런 오류를 범하고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을 방지하기위해서 오늘의 내 마음도 다시한번 내려놓습니다.

나의 미래, 나의 계획들을 모두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어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걸어갈 그 길이 어떻게 이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캄캄함 속에서 자꾸만 올라오는 불안감에 주님을 불신해버릴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결국에 저희를 선한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주님이 인도해 주실 그 선한길을 믿고 자꾸만 올라오는 저의 불안감을 주님앞에 내려놓습니다.

나의 필요를 먼저 아시고 채우시는 주님 제가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고, 주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마음을 허락해주시고, 그런 환경을 허락해주세요

자꾸만 세상적인 능력도 부족함을 느끼고 자꾸만 불안감이 올라옵니다.

이 또한 주님앞에 내려놓고 그저 하루의 할 일을 감당해내겠습니다.

올라오는 불안감을 주님앞에 내려놓고 오늘 하루를 견뎌내겠습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쌒였을 때 주님이 그 쌓인 하루들의 경험들로 크게든, 작게든 주님께서 선한일을 위하여 써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생기는 저의 필요들을 주님께서 알아서 채워주실 것을 믿고 의지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제 필요....아시죠?찡긋

마가복음 8장 1~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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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명을 먹이시다(마 15:32-39)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1)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마 16:1-4)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2)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2)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2)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마 16:5-12)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3)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어노인팅 때 들었던 말씀이 기억이 난다.

이스라엘 역사 중 가장 하나님을 많이, 멀리 떠나있던 두 시기가 있었는데,

하나는 출애굽 시대, 두번째는 예수님의 초림기

둘 모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많은 기적이 일어났던 시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하나님을 멀리했던 시기이기도하다.

 

비현실적인 현상들을 경험한다고 해서 주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가장 거역하는 모습을 많이 관찰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도 이쁘다고 독이든 약이든 바라는걸 다 들어주고 키우게 되면 오히려 엇나가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눈앞에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경험을 했으나 돌아서고나면 또 잊고 현실을 불안해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글로만 읽었을 땐 '저렇게까지 큰 경험까지 해놓고 왜 또....' 싶은데 현실의 나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들이 간혹 나오기도한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고 난 후에 교회를 나서는 순간부터 현실의 걱정들로 걸려 넘어지면서 또 다시 현생과의 갈등이 시작이 되는 것 처럼...


기도

주님이 우리의 변한 모습을 돌아보게하시고 그 자리에서 돌이키사 주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변한 모습을 질타하시기보다 그 자리에서 아파하고있는 우리의 모습을 끌어안아 위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조금전에 은혜의 경험을 하고서 돌아서고나면 또 다시 세상과 타협할 것을 알고계셨고 그런 모습마저도 사랑하셨습니다. 그저 주님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그래요 우리는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평생 죄와 싸워야하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어 우리의 칼과 방패가 되어주시고 용기가 되어주셔서 기꺼이 싸울 힘을 주십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빛 가운데로 나아가 주님앞에서 나 자신을 비춤으로 나의 아픈 모습을 주님앞에 치유받고 힘을 얻어 세상으로부터 꿀리지않고 강건하게 싸워나갈 힘과 용기를 주세요.

마가복음 7장 24~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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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보니게 여자의 믿음(마 15:21-28)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시다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오늘은 두가지의 사건을 보여주신다.

첫번째는 좀 간단하지만 넙죽 엎드리는 절박함과 겸손함을 보인 어느 귀신들린 딸을 둔 '엄마 이야기'

두번째는 비교적 복잡한 귀먹고 말더듬는 자의 치유의 사건

 

첫번째 : 귀신 들린 딸을 둔 엄마의 절박함

은혜는 배고픈 자의 것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있다는것

정확히 나의 해석으로 돌려 표현을 하자면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자신이 심령이 가난한 것을 알고있는 자의 것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간곡히 부탁했을때만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은 아니다.

은혜는 우리삶의 패시브처럼 항상 부어주시고 계신다. 우리 삶 속의 산소처럼 너무 익숙해서 알아 차리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일뿐.

자신이 은혜에 목이 마르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간곡히 요청했을 때 '그것이 은혜다.'라고 알려주신다.

물론 오늘의 본문은 좀 특별한 은혜를 요청하고있다.

 

이방 그리스인의 여인이 자신의 딸을 귀신에게서 해방시켜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한다.

"예수님 제 딸에게서 귀신을 쫒아내어 주세요 제 딸이 많이 아파합니다."

"자녀로 먼저 베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네 알고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들도 주인집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저에게 그 부스러기라도 허락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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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해하기쉽게 재해석을 하게된다.

"주님 우리에게도 밥 좀 주세요"

"미안하다. 이 밥은 우리식구들을 위한 것이다."

"네 암요 당연하죠 제가 그 밥그릇을 뺏겠다는 것이 아니라 혹여 먹고 남는것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네 믿음이 내게 족하다"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은혜에 대한 (자신을 개로 비유할 정도의) 겸손함과 간절함을 보셨다.

그정도로 자신의 자존심을 굽히는 일이라면 역시 엄마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말 허무맹랑한 소문에도 자신의 자존심을 굽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그만한 절박함을 보인것이다.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그만큼 간절했을것이다.

 

두번째 : 귀먹고 말더듬는 자의 굳이?스러운 주님의 치유의 역사

이 사건에대해서는 두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이 직전 사건에서는 굳이 행차하지않아도, 눈앞에 있지 않아도 치유의 역사를 보여주셨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주님께서 굳이 자신의 두 손을 이용하시고, 침을 이용하셨다.

그 귀 먹은 자의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아마도 그에겐 예수님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을 이해하셨던 탓일까?

가장 합리적인 생각은 예수님께서 "너의 죄가 사하였다."라거나, "말을 해봐라"라는 그 말조차도 들을 수 없는 귀 먹은 자의 적절한 처방전을 행하셨던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 사람은 듣지못한다고해서 외톨이는 아니었다.

그 사람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람들이 그 사람을 예수앞에 데려다 놨으니..

좀 풀리지않는  의문점들.

또 주님께서 다른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 귀 먹은 자는 망설이지 않고 소문을 낸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귀 먹었던 자가 전혀 다른사람처럼 잘 듣고, 잘 말하는 모습을 보고 어찌 된 일인지 안 물어볼 수 없었을 테고 너무나 신난 이 사람의 마음으로는 이 사건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을테니 당연히 예수님이 말하지 말라고 하셨던 경고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될것을 모르진 않으셨겠지. 아시는것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을 행하셨겠지.

그걸 알면서도 굳이 그 자에게 경고하셨던 것은....그렇다고 경고 안할수는 없고 하시기는 하셔야하셨겠지.

왜 굳이 경고를 하셨어야했을까...

밝혀지면 안되는 사건이었다면 굳이 꼭 행하셔야할 사건이었을까..

 보이셔야하셨던 사건을 이루신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 자가 안타까워서 행하신 사건일까..

 

풀리지않는 의문점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주님 저에게는 아직까지 예수님의 의도를 해석하기에는 너무나 어리석고 모르는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선한곳으로 인도하여주실 그 주님의 선하심과 우릴 향한 사랑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선한길로, 건강한길로, 좋은길로,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합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심령이 가난한자라는것을 잊지 않고 그 마음으로 주님앞에 엎드려 은혜를 간청하는 마음을 잊지않게 해주세요

죄인을 위하여 이땅에 오신 예수님. 우리는 병자이고, 죄인임을 잊지않게 해주세요.

교만한 마음으로 주님을 외면하고, 제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떠나지 않고 은혜를 계속 갈급해하는 마음을 허락해주세요.

저의 어리고 어리석은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이 어리석은 마음을 이끌어주심으로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허락해주세요

 

 

하루가 멀다하고 반찬투정이 일상이었다.

엄마에게 반찬이 이게 뭐냐고

왜 고기반찬은 없냐고

나는 토끼가 아닌데 엄마는 맨날 풀만 먹인다고

그렇다고 해서 엄마는 나에게 고기반찬을 내줄 순 없었을 것이다.

누구보다 내가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걸 알면서도 마지막까지도 투정부렸다.

"제발 고기반찬도 같이 해주면안돼?"

 

그렇게 독립을 결심했다.

독립하고나면 매일의 양식은 내가 고를 수 있고, 매일 고기반찬을 먹을 수 있으니까.

처음엔 누군가의 빈자리가, 더이상 보이지 않는 간섭이, 그 자유로움이 마냥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평생을 혼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혼자 있는 시간에 주변이 고요해져 생각에 잠길때면

누군가의 빈자리가 허전해보이고, 보이지 않던 노동이 미안해졌다.

그렇게도 밉던 풀떼기 반찬들이 그리워졌다.

우리를 키워낸 눈물이, 조금이라도 더 해주려는 땀방울이, 잘못했을 땐 건네준 위로가,

사고쳤을 땐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와 나를 걱정하던 그 모습이...

 

대부분의 깨달음은 늦게 찾아오고 그 깨달음과 함께 후회도 같이 밀려온다.

이 늦은 후회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분은 나를 아무말없이 꼬옥... 껴안아주셨다.

그리고 한참후에 한마디 꺼내셨다.

"고생많았다...기다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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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사랑을 부어주시는 주님

그리고 저는 그 사랑을 매일같이 투정부렸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랑이 아니라고...

"주님 이거말고 저거라고 몇번을 말해요"

하지만 주님은 그당시 그것이 제게 독이될것을 알고계셨습니다.

"아가야 모든것은 때가 있는 것이란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겠니?"

"아 몰라요 안먹을래요"

이런 싸가지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여전히 나에게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내가 보이던, 보이지않던.... 그 모든 사랑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주님의 그 은혜를... 그 사랑을 산소와 같이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그 산소마저도 사랑으로 여기는 시선을 꾸준하게 유지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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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다(마 12:9-14; 눅 6:6-11)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많은 무리가 나아오다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열두 제자를 세우시다(마 10:1-4; 눅 6:12-16)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1)가나나인 시몬이며
19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1.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 사건은 이전 큐티의 본문 마가복음 12장 1-8절의 내용(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르다)과 매칭이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자르는 모습을 바리새인들이 보고는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었던 그 사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지적을 듣고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려 또다시 안식일에 사람을 치유하는 일 가지고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 하셨던 것의 주님의 정확한 의미를 분별하고, 그 의도에 맞게 순종해야 할진대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자신들 나름의 논리를 적용하고, 그것에 따르지 않으면 시비 트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안식일인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하여 자신들의 논리로 변질시켜버린 것이다.
마치 이번 주 주일에 교회 가지 않으면 당장 지옥에라도 떨어질 것처럼 인식이 변질되어버린 우리들의 신앙 같다.

주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내 나름의 논리를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혼자 멋대로 생각하고 결정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시선과 말씀을 기반으로 주님의 의도를 파악하자.

2.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손 마른 사람은 정말 부지런히 회당을 다녔던 것이다.
누구 하나 자신에게 눈길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자신의 기대와 고집을 가지고 언젠가 치유될 그날을 기대하며.
이 모습은 왜 꼭 날 보는 것같이 불쌍하게 느껴질까...
누구 하나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말 한번 걸어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나의 할 일을 하며 걸어왔던....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사람은 마음속에 포기하지 않는 기대와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부지런히 자신만의 제사를 지낸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꿈이자 절박한 희망이었겠지

나는 언젠가부터 그런 꿈을 포기한 채 미련을 버리고 있었다.
내 욕심이라며 내 욕심은 들어주지 않으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혼자 멋대로 판단하고 버리며 살아왔다.
내 필요를 내려놓고 주님께 집중하라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떠나서 그냥 주님께 집중하라는 것이었는데..
내 욕심인 것을 떠나서 내가 주님께 집중하고, 그것이 나를 더 좋게 이끌어준다면 주님이 알아서 주실 것을
나는 안 들어주실 수도 있으니까 일찌감치 체념하고 다닌 것이다.
그런 영혼이 없으니 열정마저도 식었을 테고 애초에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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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혼자의 시간을 보내게 해주시는 주님께 다시금 집중합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아니라

그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뒤로하고 그냥 주님께 집중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에 집중합니다.

이끄실 곳으로 나를 이끄시고, 그곳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하는 시선을 갖게 해주세요

주님의 말씀을 함부로 판단하고 결정해버리고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시선으로 다시금 생각해보고 주님의 뜻을 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나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걸까?

아니면 '열심히 살고자 발버둥치는'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걸까?

나의 모든 능력들이 사라진다면.... 더이상 개발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해도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가 나를 사랑하고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자꾸만 나 자신을 외부로부터 인정받는 것으로 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중독되어버린 탓일까?

 

날 사랑하기 위해서 뭘 해야하는건지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게 뭔지 모르겠다.

그러니 더더욱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주님은 아무 기준 아무 조건없이 그저 내가 당신의 존귀한 자녀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아직 가슴으로 와닿지않은것인걸까

그게 가슴으로 오게 되면 날 사랑할 수 있을까...

묻고싶고, 알고싶다.

날 사랑한다는 감정이 어떤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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