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 순종이 없었다.
그냥 삭제가 되어있었고, 존재할 자리가 없어져 있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되어버렸다.
꿈이 내가 되어버렸고, 내 옆사람이 되어버렸고,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이상... 빛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계속 싸웠다.
"이해하자...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고, 감당해야 할 일이다."라는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주님 내가 왜 그래 야해요?,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거예요?
내 모든 세상을 무너뜨릴 만큼 큰 죄인 거예요?
난 이해가 되지 않아요 뭐가 그렇게까지 잘못인 건데요?
제가 책임을 지면 되는데 왜 저한테 기회조차 허락해주지 않으시는 건데요?"
이라는 마음으로 반항심이 가득했고, 원망으로 가득 메웠다.

그 상태는 부모님과의 관계 단절하는 마음과 얼추 비슷했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나면 그 이후부터 평생을 가시가 되어 날 괴롭힌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나에겐 그 가시가 불순종이었던 것이다.
불순종의 결과가 관계의 단절이었고, 가장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지옥을 맛보게 된 것이다.

죄는 그 자체로 죄일 뿐인데 내 기준대로 죄의 무게를 측정하고 있었다.
또 그 측정된 죄의 무게를 통해 주님과 타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 이 정도면 괜찮죠? 주님도 이해해주시는 거죠?"
내가 내 멋대로 주님을 판단하고, 타협하고,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내 안에서 깽판을 치며 나를 병들게 하고 있었고, 주님과 멀어지게 하고, 죄악 가운데로, 지옥 가운데로 나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넙죽 엎드리기로 했다.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넙죽 엎드린다.
이제 다시 내 마음에 주님의 자리를 만들고 순종을 드린다.
회개한다. 가슴 찢어지게 회개한다.

죄송합니다 주님.
내가 나된것을 죄송합니다.
죄악 앞에서 주님을 욕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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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 (jiieum 지음, 규장)

'포이에마'라는 단어를 들어본적 있어? 알고있는 사람들은 다들 한국어로 '걸작품'으로 알고있을거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걸작품이고, 하나님의 손에서 태어난 아주 귀하고 아름다운 자녀라고들 하시잖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던것 같기도하고 와닿지 않았을 때가 많았어
"내가 걸작품이라니 허구헌날 실수하고 사고치는데, 뭐하나 제대로 하는것이 없는데 뭐가 걸작품이란거야?"

그래..솔직하게 와닿지 않았다기보단 거부감에 가까웠지.

위 책의 그림에서 말하고있는 화자가 딱 나의 마음이었지.


그런데도 주님은 꾸준하게 나한테 "그래도 너는 걸작품이야"라고 하시더라고 그게 어떤 방식이건 간에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았어. 지금도 딱히...잘모르겠어 믿고있는건지 아닌건지
그런데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생각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있는 모든 이들이 생각을 하고있을 것이고, 과거에 그런 시절을 거쳤던 이들도 있을거야

내가 왜 그렇게 느낄까 이유를 느끼지 못했어.
그 이유를 요새 읽고있는 책에서 나에게 알려주었어
"그거 니 기준이야"라고.
실수하고, 사고치고 그런 허다한 일들.. 그것으로 내가 보잘것 없다 느끼는것? 그 모든것이 '나의 기준'이라는 것
걸작품은 자기자신이 판단하지 않아. 그 작품을 만든 누군가가 판단하고 있었던거야

알고보면 그 모든게 '교만'인데 말이야.

나를 만든 건 내가 아니야. 주님께서 우리 부모님을 통해 탄생시키시고 나의 인생을 계획하셨지

그리고 주님은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전심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시래

그렇게 날 설계하시고 만드신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

"야 내가 널 만들었는데 니가 뭔데 널 평가하냐? 너의 가치판단은 니가 하는게아니라 널 만든 내가 하는거야 짜식아.

아름답고 존귀하게 만들었어. 그런 너는 나에겐 매우 귀한 자녀고 꿈이고 계획이야. 그러니 나 믿고 같이 가자"

 

그래....당장은 힘들어도 주님은 항상 날 좋은곳으로 인도해주셨어... 그 과정은 눈물 콧물 싹다 빼버리시지만 말이야..

나도 언젠가 믿겨지겠지

 

하나님을 알게되서 정말 다행이야.

그 분 덕분에 오늘의 힘을 낼 수 있고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까.

물론 오늘은 힘들거야. 내일도 힘들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약속하셨어

언젠가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을 밝혀 주실것이라는 약속.

그 약속을 믿고 굳게 기다리자.

오늘의 힘이 내일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그 성장의 미래의 빛이 되기까지 

 

 
김명선 - 오늘의 힘, 내일의 소망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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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 책은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모습을 보고 써진 책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강해진다.

매우 작고 연약한 믿음. 아는건 많았지만 그만큼 따라주지 않았던 믿음

아는게 많았던 만큼 더더욱 이끌긴 힘들었던 마음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믿기도 힘들었고, 오히려 상처만 늘어났다. 그렇게 더욱 연약해져만 갔다.

(먹다 남은 전....ㅋㅋㅋㅋㅋ너무 적절한 표현이다.)

그로인해 힘든일이 있으면 더 크신 계획에 대한 기대보다는 원망이 앞선다.

나를 향한, 주님을 향한 원망.

딱 나의 상태 그대로를 매우 잘 표현 한듯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정말... 싫었고 혐오스러웠다.

내가 건강하고 잘될 땐 내탓, 일이 잘 안풀리고 힘들땐 주님탓이었던 내 모습이

시도때도없이 흔들리고 또 힘들땐 나 힘들다고...당장 해결해달라고 하는 모습까지도..

뻔히 그것이 해로운것인줄을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마저도 주님께선 귀히 여기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너와 내가 함께하고있지않느냐?

너가 날 내쫒았을때보다 날 욕하고 원망하더라도 너가 날 바라봐주길 원한다.

그래야 교제도하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갈수 있잖니 그렇게 해야 너가 살 수 있어. 넌 내가살렸잖니"

 

오늘도 마음속의 내적갈등으로 한참을 전쟁을 치루는 중이다.

그 무엇이 됐든, 해서는 안되는 이성적인 마음과 하고싶다는 감정적인 두 마음.

하지만 오늘도 또 다시 참고 견뎌내야할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고 다시금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 오늘을 버틸 힘을 주시고 내일을 기다릴 희망을 허락해주세요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뿐이지만
주님이 언젠가 보여주셨던 모든 것을 밝히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을 다시금 볼 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버팁니다.
그리고 다시 그날이 올때는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주님의 손을 놓지않게해주세요.
무슨일있어도 주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 (jiieum 지음, 규장)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3)

처음에 이 구절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왜 복이있는 것일까

심령이 가난하면 자꾸만 헛된 것으로 채우려고 하지 않을까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행복하다는데 왜 심령이 가난한 것일까

 

그런 의문은 말씀을 들여다보는 초점이 잘못된 것이란걸 깨닫게 되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그 모든 나약함을 주님께 맡김으로 의지한다.

나 하나만으로 이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기에 너무 힘든것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기에

그냥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맡기는 것이다.

 

나의 경건해야하는 생활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과물'이라는 모습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로인해 나의 마음은 변질이 되었고 주님으로부터 귀를 닫았다.

그렇게 마음에 사랑이 줄어들었고, 미움과 다툼이 증식해가고 몸이 뻣뻣해지고 마음이 굳어져갔다.

주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주님이 그 '모든 것'이엇다는 것을

주님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우쳐버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새 마음을 얻어 살아가는 주제에 내 힘과 내 손으로 세상을 살아가려 했다.

뼛속 깊숙한 곳까지 교만이 자리잡은 것이었다.

 

다시 심령이 가난해졌다.

그로 인해 다시 주님을 보게 되었다. 쉽진 않지만 주님을 의지한다.

나의 흔드심은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드는 연단의 과정이라는 생각으로....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주님 진심으로 교만을 끊어내시고

죄를 죽음보다 두렵도록 해주세요. 죄를 증오하게 해주세요

죄로 인해 주님과 더 멀어지는 것을 미워하도록 해주세요.....

다시는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 (jiieum 지음, 규장)

최근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생겨서 책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한때 나의 삶이 되었던 소중한 이와 마지막으로 서점에 가서 산 책 저자 "jiieum"의 <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라는 책은 이 책을 살 때 주님께서 나의 이 상황을 예비하신 것일까..
한 챕터 한 챕터 마음에 비수가 되어 날아 꽂힌다.

저자가 주님인양 나를 직접 보시면서 책을 쓰신건가 라는 생각이 들만큼 소름이 돋았다.
또 그만큼 더 죄송스러웠다. 좀 더 일찍 읽어봤다면.... 후회하기전에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정확하게 주님의 자리를 빼앗은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혼자 살만해지니까 더이상 주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고 딜레마는 점점 더 깊어져만 가고

그로인해 주님을 더더욱 문 밖으로 내몰게 되었다.
그 자리는 오직 주님을 위한 자리 주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다.

다른 누군가가 감당하게 되었을 땐 너무 큰 부담을 안게 된다.

하지만 그 주님의 자리를 다른 무언가에게 내어주고 자리를 뺏긴 주님은

문 밖에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안타까우셨을까...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난 주님을 잊고 지냈는데 주님은 날 잊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내 마음에 빈자리가 생길때까지 계속 하염없이 문 바로 앞에서 계속 그자리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 마음의 빈자리가 생겼을 때 또 다시 나에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셨다.
밖에서 묵묵하고 한결같이 문이 열릴때까지 기다리고계셨던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고민을 해봤다.

이유는 여러가지일것이다.

  • 신앙의 목적이 나였던것 -> 내가 건강할땐 의지하지 않는 점
  • 주님이 함께하지 않는 다른 무언가로 하루의 전부를 가득 채웠던 것
    (스푼, 사랑, 연애, 게임, 
  • 삶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나의 재미를 채워줄 자극을 찾았던 것.

이 습관들로 내가 병들게 되었다는걸 잊지말자...

그리고 나의 병든 습관으로인해 주변까지 병들게 했던 그 상처들까지...

 

아침 출근길 독서 한챕터

나의 잘못된 말버릇을 딱 짚어 지적해준다.

괜찮아, 내가 사랑을 들려줄게 (jiieum 지음, 규장)

나의 불평은 무엇일까 잠깐 고민해봤다.

  • 다른사람을 쉽게 평가하고 판단하는것
  • 나의 가치 또한 낮게 평가하고 자책하는 것
  • 매일의 아침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며 오늘도 어김없이 밝아진 하늘에 짜증내는 것
  • 반복된 일상속에 감사함을 찾기보다 재미없다며 실망하고 더 자극적인것을 찾는 것

너무 많다... 이 또한 굳이 고쳐야하나 했다. 이 또한 교만이었다.

이제는 깨달았다. 이 모두를 감사로 덮지 않는다면 나의 행복과 삶의 질을 갉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치해둔다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져서 불평과 불만 속에서 지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읽은 본문에선 이런이야기가 나왔다.

나 또한 공통된 불만을 가지던 내용이었다.

"나는 대체 왜 이모양일까요?"

나 자체가 불만이라는 것

이 습관이 모든 불만의 근원이자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나 자신에게 "나 자신"으로써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면

주변에 모든 현상들의 불만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주님은 "'네가 너여서' 기뻤으면 좋겠어 내가 너를 그렇게 지었기 때문이야" 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나는 나로써 받아들였다 생각했지만 아직 그러지 못한 부분들이 훨씬 많았다.

나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원망도 많이했다.

그 원망으로 매일밤 눈물속에서 나를 죽이고 또 살고싶어 발버둥쳤다.

누군가가 관계의 균열은 관계의 대상에 대해 다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것 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그런 균열을 저지르게 된것이다.

나는 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안다는 교만을 저질렀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데 받는 것을 '은혜'라고 했다.

모든 것이 은혜였는데 나에겐 모든 것이, 나 자신조차도 짐덩이였다.

은혜가 은혜인줄 몰랐다.

 

나는 나로써 이 또한 은혜로 받아들인다.

가장 어려운일이지만 받아들여야만 나와, 주님과, 내 이웃을 건강하게 사랑하게 될것이다.

나를 사랑함으로써 건강하게 사랑하고, 건강하게 살아가자

나를 인정함으로써 모든 관계로부터 더욱 밀접해지자.

 

주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나에게 먼저 실천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니 주님을 알아가자. 그리고 그 주님에게 내가 누구인지 여쭤보자.

 

주님, 난 누구인가요?

 

22.05.15 주일 설교 (재물이 많은 고로)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막10:17-22)

예수께서 길로 나가셨다. 길을 나서셨다.

마가복음 8장 27절~10장 52절이 길에서 길로 끝난다고 해서 "길 단락"이라고 불린다.
바디메오는 길에 있었다. 길에서 자신의 장애의 치유를 간곡히 부르짖고 있었다.
그에겐 가진것이 없었지만 간절함과 믿음이 있음으로써 죄사함을 받고 치유를 받은 것이다.

1.겸손했던 청년
본문에서 나오는 청년은 세상적으로 성공한 청년이다. 하는 사업이 잘되고 있었고, 승승장구하고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진것에 미련을 가져 내려놓지못하고 슬픈 기색으로 다른 길로 돌아서게 된것이다.
그 청년은 나름 겸손한 이였다. 그 증거는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세상적으로 매우 승승장구 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달려온것이다.
성경 전체에 아울러 누군가의 앞에 꿇어 엎드렸다는 내용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즉 꿇어 엎드렸다는 것은 자신이 상대방을 굉장히 존경하고있다는 것을 엿볼수있다는 것이다.
그런 존경하는 대상이 모든것을 버리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을 때, 그 세상 모든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슬픈기색으로 다른 길을 택한것이다.

2."니가 선함이 뭔진 알긴해?"
18절에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라고 하심은
"니가 진짜 선함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냐?"라고 재해석이 가능하다.
또 예수님이 후에 부가적으로 진짜 선함이 무엇인지 말씀하신다.

  • 살인하지 말라
  • 간음하지말라
  • 도둑질하지 말라
  • 거짓 증언 하지 말라
  • 속여 빼았지 말라


이중에서 속여 빼앗지말라는 십일조에 언급이 되어있지 않은 내용이다.
비슷하게 남의 것을 탐내지말라, 거짓말하지말라는 내용은 있으나 속여 빼앗지말라고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어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재해석하신것이다.
그이유를 추측해보면 "니가 재물을 가지고잇으니 더 많은 재물을 탐낼수있으니 주의해라"?
아니면 청년이 숨기고있는 죄악을 예수께서 인지하시고 은근슬쩍 지적하는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

3.나야 세상이야?
예수님이 모든것을 버리고 자신을 따르라고 한것은

재물과 하나님 둘 모두를 섬길수 없으니 둘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겠지.

4.청년의 이름의 행방
본문에 청년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다른본문에서도 이름 대신에 청년, 관리로 언급되고있다.
성경에서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그 인물이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청년의 이름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쓴 저자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만큼 스쳐지나가는 인물이지만 기록에 남았다는 것은 "이름 모를 청년을 향한 안타까움"일까

결론
내가 예수님말고 외에것을 선택하고 있는 그 외의 것이 무엇일까?
예수님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무엇일까?
재물?사랑?정욕?꿈?커리어? 모르겠다.......
내가 청년처럼 영생을 버리고 슬픈기색을 띄고 다른길로 나서게 만드는 무엇을 알지못하겠다...
그냥 "영생"자체를 의심하는것은 아닐까?


예배 후 개인 묵상

忘戰必危(천하수안)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전쟁이 온다.


그렇다. 나는 천국을, 영생을 기대하지않았던 것이다.
영생을 믿지않고 천국소망을 원했지만 천국은 믿진않았던 모순적인 생각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나자신을 위해, 내가 살기위해 예수를 의지했던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쓰고잇는 지금도 그런생각이 변하진않았다.
다만 서서히 변하리라 믿고 확신한다.

처음엔 이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했다.
나를 위해 주님을 의지한다는것이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힘들때는 전혀 문제되지않는다. 힘드니까 힘들어서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찾게될테니까
그런 마음이 힘들지 않다고 느낄 때는 주님을 찾지 않게 되는것이 문제였다.주님을 전혀 의지하지 않는것이다. 힘들지않으니까....그러고나서 또 힘들어지면 "나 힘들어요"하고 달려가서 징징대는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영접을 경험했고, 지금도 그분이 내 마음 속에 살아계심을 의심치않고, 사랑한다.
하지만 열정이 식은것이다. 그분을 향한 온도가 힘들땐 뜨거워지다가 또 평화로울땐 차가워진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모습이 내 자신 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것이다.
관계로 이어진 열의 전도성에 의해 나의 신앙의 온도가 주변까지 퍼지는 것이다.
그 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그 현상은 더 빠르며, 걷잡을 수 없다.

나의 신앙의 디딤돌 하나가 잘못 놓임으로써 내가 쌓아올린 신앙이 무너져 내리고 그 주변에 함께 하고있는 동역자들에게까지도 파편이 튀어 버리는 것이다.
가까울수록 더더욱 큰 피해를 입게 될것이다.

너무 늦게 알아차려버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차린것에 감사한다.

지금이라도 돌이킬수 있음에.... 많이 아프지만 아픈만큼 또 배워간다.

 

누군가 덕분에 주님을 보게 되었지만

그 누군가와 주님은 그 누구때문에 주님을 바라보기보다 주님과 나 자신을 위해서 주님을 보길 바랬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나 자신의 진짜 건강을 위해서 그 관계를 다시 쌓아 가보려한다.

그러니 이제 다시 "나자신"과 "주님" 이 해야함을 느꼈다. 나자신과 주님을 먼저 알아가보자

이 외의 모든 일들은 그 다음부터 해보자. 어떻게든 어떤 방향으로든 흘러가겠지..

 

오늘의 이 묵상과 곁들여진 바디메오 이야기로 생각나는 찬양이 있다.

 

 

다시 한 번 외쳐 부르니 예수여 나를 돌아 보소서
어둠 속에서도 빛을 비추시는 예수만이 내 소망
다시 한 번 내 삶 드리니 예수여 내 손 잡아 주소서
폭풍 속에서도 주가 붙드시니 예수만이 내 생명
브리지임팩트 프레이즈 - 다시 한번

 

오늘은 드라마를 통해 깨닫게 된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끄적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넷플릭스를 남들보다 뒤늦게 보았다.

나는 드라마가 종영이 되고서야 찾아 보게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다른사람들은 결말이 허무하다고 말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드라마를 미디어적인 작품 자체를 즐기는것을 좋아하기에 스포를 당해도 재밋게 보는 편이다.
미디어적인 작품 자체를 즐긴다는 것은 결말이 어찌됐건, 그냥 당장 재미있으면 재미있게 본다는 뜻이다.
(내가스토리의 전개에 대해 깊이 몰두하지 않아서인가...?)

결말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결말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개인적으로 나쁘진 않았다.
(이또한 내가 스토리 전개에 대해 그리 깊이 몰두하지 않아서 일수도있다. 그저 드라마로 즐기는 것인가?)
세상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고, 같은 과정이면서도 다른 과정을 낳기도한다.
다른 과정속에서도 같은 결과를 낳을 때 많을 것이다.
이 이야기 또한 그런 수많은 전개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 모든 과정과 결과들이 우리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것은 신이 내 손바닥에서 놀아나주길 바라는 마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쓰여진 허구 이야기지만 그 속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들이 있을 것이고, 나는 그 이유를 존중하고 이해한다.

나희도(김태리)의 캐릭터는 백이진(남주혁)이 말했던 것처럼 뭘 함부로하는 성격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이 드라마가 더 끌린듯하다.
나이가 4살이나 차이나는 초면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꿀리지않고 당당하게 소리칠수 있는 그 캐릭터가 꼰대인 나에게도 의외로 인상깊이 남았다.
그 중에서 가장 닮고싶었던 모습은 그녀의 일기장.
개발자들에게 굉장히 소문난 챌린지가 있다. 1D1C (1일 1커밋)
매일 자신이 배운것을 정리하고 기록하여 자신의 기술 일지를 작성해나가는 것.

그녀는 그것을 매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기장에 매일 자신의 행적과 실수들, 훈련 중 배웠던 것을 일기장에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빈틈을 보완하고 꾸준하게 발전해나가는 모습이 매우 존경스러웠다. (그 모든것들이 그녀의 자산이고, 보물일 것이다.)
물론 허상의 인물일지라도 배워야할점이고, 실제로 1일1커밋을 비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꾸준하게 실천해나가는 사람도 있듯이
그래서 나는 드라마를 보고나서 매우 후회했다.
그동안의 나의 행복했던 순간들, 슬펐던일, 배웠던 모든 일들을 기록 하지 않은 모든 나의 지난날에 대하여
마냥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 이틀 미루어 두다가 그 날들이 먼지가 되어 잊혀진 기분이 든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추억을 쌓았던 그 모든 시간들이 내 기억속에서.. 그렇게 먼지가 되어 잊혀져가는 것이 매우 슬픈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드라마였다.

이 블로그 또한 그런의미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실수들, 배움들, 경험들, 추억들 그 모든것들을 기억을 거쳐 먼지로 만들기 싫어서 시작했지만 나의 게으름으로 수많은 나의 보물들을 그렇게 흘려 보내버렸다.
그것을 모든것을 잃어버리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매일을 기록하고 그 실수들을 보완했왔다면 지금의 나자신은 변해있을까? 다른사람이 되어있을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을까
다시는 같은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않지만 또다시 그러지않을거라는 자신 또한 없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나또한 다르지않을테니....
앞으로 그 어리석은 인간에서 조금이라도 탈피하여 나의 신앙과 개발, 나의 인생을 더 좋게 가꾸어가고싶다.
1일 1커밋을 하지못하더라도 적어도 나의 모든 순간들을 그저 가볍게 먼지로 날려버리지 않게 이곳에라도 기록하고싶어진다.

대천 해수욕장 어느 카페

 

바다... 하늘.... 산...

자연은 항상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않는다.

그냥 그 자체만으로 존재할 뿐이다.

시간의 흐름대로 자연의 섭리대로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존재함으로 우리에게 행복과 만족을 준다.

 

하늘과 바다와 산은 존재만한다.

식물은 숨을쉬고 살아있다.

동물은 움직이기까지 한다.

인간은 이 모든것들을 하는 동시에 생각까지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그치만 인간의 욕심으로 더 잘하고 싶은 발버둥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발버둥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그리 하지 않아도... 더 잘하지않아도 이쁜데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인 만큼 그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일 것이다.

 

Jillian Edwards - Heaven's Eyes (Cover ny Team Luke Cre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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