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의 제자"라는 책으로 제자 훈련을 받고 있어서 책 인용을 좀 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을 라틴어로 "Credo" = 심장을 내어드리는것.

 

곧 온 마음과 생명을 주님께 받칠 수 있겠는 가? 에 대한 단어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해서 그 모두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심장을 온전히 주님께 받칠 수 있는가?가 나의 믿음을 대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생활 속에서 가장 소중한것을 주님께 내어드릴 수 있는 겠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No라고 답변을 한다면 그것은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과 신념의 사람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의 사람은 주님앞에 나의 심장. 곧 나의 모든 소중한것과 나의 생명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신념의 사람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중에서 편한것만을 골라서 나의 신념으로 지켜 지내는 사람인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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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장 33~37절

33.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부터 나오게 되는 다윗가 사무엘의 차이점.

사무엘은 골리앗을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며 두려워 떨었지만 어린 청소년이엇던 다윗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에게 분노를 표출 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골리앗 앞에 당당히서서 믿음(물맷돌)을 던져 골리앗을 원킬 시켜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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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5장 4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사람들은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격고 고난을 격습니다.

이 책에서는 환절기를 비유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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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에 꽃샘추위가 닥쳐왔을 때 날시가 매섭다고 해서 다시 겨울 준비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온과 상관없이 봄 맞을 준비를 하고 새학기를 준비합니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계절의 원칙에 따라 봄은 온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안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진리를 정말 믿는다면 처한 환경이 겨울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항상 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라는 글로 주님은 이 책을 통해 저의 마음을 한차례 더 때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시련이오고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걸까?라는 의문을 시작하여 의심이 의심을 낳는 무한증식에 빠지게되고

그렇게 시험의 늪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그런 하찮은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또한 종교인이 되는 것이겠지요.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확증을 하셨다고 하십니다.

혹여 마음속에 잇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신다면 십자가사건과, 지금 우리인생속에서도 함께 일어나고잇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한것을 되새기며 다잡으시길 바랍니다.


이 단원을 통해 나는 무엇을 의지하며 인생을 살아왔는지 다시 한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Q.나는 지금껏 무엇으로 인생을 살아왔습니까?

A.내 생각, 신념, 걱정, 부모님의 기도..

예수님을 믿는다곤 했지만 역시 나의 신념 뿐이었다.


 

그리고 신앙인들은 자기들의 신앙 상태를 선택의 기로에 서서 수준이 드러나게 됩니다.

 

 

블로그 개설하고 일년동안 방치하다가 묵상일기로 첫 글을 씁니다.

처음과 끝이 예수님이어야하고

그 예수님께 다가가기위해 십자가를 지고

그십자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야하는것임을 고백합니다.


창세기 37장~ 

하나님의 계획의 이야기를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로 요셉 이야기가 먼저생각난다.

어렸을때 한나라의 2인자 총리가 된 요셉을 생각하며

요셉처럼 되고자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모든 연단과정을 뛰어넘어버리고

"우와...나도 요셉처럼되고싶다..."라는 마음을 가졌다.

근데 이 마음을 좀 더 파고들어가보면

"우와... 나도 한나라의 총리되고싶다.."일것이다.

그 근거는 그 "요셉이 되고싶다"라는 마음 속에는 

그 낯선곳으로 형들에게 배신을 맞아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갖혀버리는 연단의 과정은 모두 뛰어넘어버리고

결과만을 바라보고 그러한 마음을 품었을 것일테니까.

문득 요셉의 말씀을 보면서 생각 난것은 요셉의 일대기를 보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장면이 단 한장면도 안나오는데

요셉은 훗날 자기가 애굽의 2인자가 될것이란것을 알고 있었을까?

물론 어렸을때 꿈을 통해 예언을 보기는 했지만 그게 총리가 되어 

다른 형들뿐만이아니라 만백성의 절을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햇을것이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형들의 배신이 훗날의 후손들이 모래알보다도 많게 키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었단 것이다.


나의 상황과 나의 고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던 내자신의 모습이 생각난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상황을 허락하셨을까"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상황 가운데에 두셨나요?"

물론 그 상황이 지나고나면 그 모든 순간이 연단의 과정이었고, 그 기간을 견디고나면 은혜가 있다는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는 그것을 알지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해버린다.

그래서 하나님게 한번더 비수를 꽂는다.

"하나님....이러실꺼면 진작에 알려주시지 그랬어요.. 괜히 하나님을 원망했잖아요"


만약 형제들의 배신에 의해서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저 "애굽의 2인자 요셉의 후손"들이라는 이유로

요셉을 알지못하는 바로로 바뀌기전까지 애굽이라는 인큐베이터 속에서 수를 어마무시하게 불려나갔으니까..

아마 요셉이 노예로 팔리지 않았다면 (당시 부족간의 서열다툼에 의해서) 이렇게 민족을 이루는데에는 시간이 더욱더 오래걸렸을 것이다.


그럼 한단계 더 연관지어서


(출14:10~11))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만약에 출애굽기 14장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홍해가 그렇게 갈라질줄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모세와 여호와를 원망했을까?



(출15:22~25)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만약 출애굽기 15장에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물을 허락하실것을 알았다면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을까?

시내산에서 모세가 40일동안 있을 때 하나님이 모세가 살아있다는것을 알려 주셨다면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끼?


물론 그 결과를 알지 못한다.

이미 역사는 지나왔고, 지금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주님 왜 저에게 진작에 알려주시지 그러셨어요.."라는 말을 좀더 달리해보면


"주님... 진즉에 제 인생의 계획을 좀 스포일러 해주시지 그러셨어요.."와 같다고 느꼈다.


우리는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 당하는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화를내기도한다.


그러면서 내 인생에 대해서는 스포일러 해달라고하는 이중적인 모습인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더이상은 내 인생에 대한 스포일러를 요구히지 않았던거같다.


더이상 원망도 하지않을것이다..


추가로 무슨일을 하던 나의 힘이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주님의 도우심으로 하는 것임을 항상 자각하며 일을 해야하는것을 습관으로 만들어가야 할것이다. 잘안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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