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아가겠다고 선포하고부터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갈리기 시작한다.

잘할 수 있을 것이다 VS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말린다. 평신도 사역도 사역이라고
또 묻는다. 잘할 수 있겠느냐고..
사실 나도 자신은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의 바람직하지 못했던 언행들을 내가 아는데 어떻게 그 무거운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동일한 마음을 주신다.

 

"저기 저 아파하는 아이들을 한번 봐줄래? 너의 어렸을 쩍 모습 같지 않니?
너도 참... 많이 아파했었는데 너 살리느라 많이 아파했었고 애 좀 썼다.
그렇게 잘 극복하니 이렇게 빛을 보게 됐잖니?"
"주님... 저는 못해요 말도 못 하고 내 안에 사랑도 없어요 나 밖에 모르고,
주변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걸요.
또 장난을 칠 때면 정도를 모르고 칠 때가 많은데 이런 모난 놈이 어떻게 해요...
저는 요나도 되어보고 탕자 이야기의 형입장도,
동생입장도 되어봤어요 부자 청년도 되어봤고,
바리새인도 되어 봤어요...
이런 추악하고 문란한 제가 그 무거운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요"
처음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이렇게 들렸다.
"그러니 네가 말씀을 잘 붙들면 되지 않겠니?
기도 잘하고, 말씀 잘 기억하면서 내게 순종하면 그건 해결될 거야 걱정 마렴"



근데 이 말씀은 사실 나에게 부담만 더 지어질 뿐이었고, 막상 알고 보니 이건 주님이 주신 말씀이 아니라 나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더 은밀하게 건네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걱정 마... 지금부터 내가 널 변화시킬 것이고
너를 키워낼 거야 내가 다 할 거야
네가 할 거는 잘 따라오는 거뿐이야"


지금도 내 앞에 쌓여있는 무수히 많은 어려움들이 내 마음을 가로막곤 한다.
이 모든 어려움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나의 죄악들과 본성은 어떻게 고쳐야 할 것이며
그 시간들에게 필요한 재정은 어떻게 채워야 할지... 너무나 막막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매일 아침, 저녁에 무너지는 나의 마음 상태가 가장 무섭다.
나의 연약함으로 자꾸만 과거를 자책하고 후회하며 무너진 자신의 모습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내게 너무 어려운 과제이다.

지금의 이 자신 없는 모습이  모세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활 때의 모습인가..
모세가 광야에서 방황할 때 자신의 모든 연약함을 내려놓을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인가..

나도 잘 안다. 이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이겨낼 방법은 단 하나, '나 사용법'이 적힌 말씀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 한 구절 한 구절 되뇌며 그 좌절의 시간을 이겨낸다.
그리고 그 좌절의 시간 동안 내가 그만한 내공이 쌓일 것도, 감정의 그릇이 커지는 것도 믿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겐 너무나 어렵다. 무섭다. 두렵다.

주님
지금 이 허락하신 광야의 시간 동안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
그리고 나를 다듬어 가는 시간임을 믿고 의지합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올라오는 나의 연약함으로 자꾸만 이 의지함이, 믿음이 무너져 나의 계획과 욕심을 의지합니다.
이런 연약함을 용서하시고 제가 온전히 주님께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온전히 주님께만 집중하길 원합니다.
모든 번잡한 마음과 욕심 모두 내려놓고 주님께 집중하길 원합니다.

https://youtu.be/O15Ov4Jm_no?si=5CIJAI9wBaJvwng7

과거의 실패에 너무 낙담하지마

자책도 하지마

넌 최선을 다했어

 

너가 밝게 이겨내려는 모습이 정말 이뻐

하지만 그 모습 뒤에 감춰진 아픈 너 자신도 안아줘

그 또한 나의 모습이고, 그 모습 마저도 품을 수 있어야 진짜 회복을 이룰 수 있더라

 

계속해서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겠지?

그 질문 속에서 언젠가 소명을 을찾고

또 그 소명을 위해 최선을 다할거야

지금도 그러고 있을거고

 

근데 그거 알아?

넌 그 최선이 아니어도 최고의 존재야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아름다움의 하나야

언젠가 당신을 통해 또 다른 위로와 소망을 얻는 사람도 생길거고

 

그냥 너 이름대로 살아가

그 모습 자체로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우니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삶보다

날 위한 삶이 먼저 충족되었을 때 다른 누군가의 위로와 소망이 되는 거야

너는 너가 마냥 작아보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찬란한 희망의 빛이 될거야

 

오늘 하루 살아내느라 고생많았어

하루 마무리까지 잘하고 내일 다시 힘내서 살아보자 

 

<목소리상점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목소리상점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고향에서 함께 교회를 다니다가 서울로 상경하게 되면서 더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고향 동생을 만났다. 

5년만이었다. 

그 사이에 서로 각자만의 시간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그 시간 속에서 눈에띄는 성장을 이루었다. 

 

고향에서의 그 친구 모습은 발음도 어눌했고, 공황을 앓아 힘들어하던 친구였다.

일반적인 교제가 매우 힘들었던 친구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고자하는 의지는 매우 강했다. 

배우고, 성장하고자 하는 욕심이 잠재되어있었다. 

마침내 자신의 둥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회사생활을 하고, 자신의 비즈니스의 경험을 통해 수많은 경험들을 거치며 성장을 이루었다.

그 경험을 통해 건강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쳐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아끼고 있었다.

자신에게 이로운것과 해로운것을 정확하게 분별해내어 해로운것을 필터링하기도 했다. 

그렇게 성장을 이루어낸 모습을 보니 그 작게 느껴지던 아이가 태산처럼 크게 느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난 그동안 무엇을 했나"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이제 내가 개선해야할 부분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그것은 꾸밈.

자신을 정말 아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거나 대충 입고다니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만큼 좋은 것을 입히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난 그것을 너무 가치 폄하했고, 나와는 거리가 먼 행위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내면 그대로 나 자신의 가치를 채운다 해도 그게 외면까지 전이가 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고, 다시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을 체감했다. 

그러니 남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내면 말고도 외적으로도 꾸며야 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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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여러모로 힘든일이 많았다. 

그동안 모아왔던 자금도 날리게 되었고, 

건강의 적신호로 정신을 잃기까지 했다. 

나는 이 상황에서 나 자신에게, 주변에게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이번 이별을 통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위해 걱정하고, 기도해주는 이들에게 그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의 상황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주는 태도에 대한 보답이다.

 

힘든 상황에서 이마저도 벅찰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말고 챙겨야할 만큼 중요하다.

상대가 소중한 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경각심을 가져야한다. 

진즉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왜 항상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서야 깨닫게 되는 것일까?

소중한 사람을 잃었으니 그 상대가 소중했던 것 만큼 큰 깨달음을 얻는 건 반사적인 작용이겠지만

애초에 그 상대를 잃기도 전에 먼저 깨달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만한 아픔을 동반한 깨달음이 아니라면 경각심이 없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결국에 이 또한 나의 교만이었고, 상대의 믿음에 대한 배신이었고, 불신이었다.

 

넘어지고서 바로 일어서서 멀쩡한 척 견디면 상처는 더더욱 악화만 된다는 것을 잊고 지냈다.

힘들 땐 자신의 내면이 동굴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왜 동굴에 들어가는지는 알리고 들어가야지

다음엔... 힘든일이 생긴다면 바로 해결해보려고 노력하기보다 잠깐 멈춰서자

멈춰서 나 자신을 점검하자

점검하고, 안부를 묻자 "괜찮니? 다친덴 없고?"
괜찮을리가 있나... 그래도 살아야지

그리고 주변에 나의 상황을 알리자. 

더이상 감출 것이 아니라 기도요청을 해야겠다.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해달라고..

나의 이 어둡고 힘든 부분 마저도 열어주어야 상대가 내 마음에 들어와 함께 힘이 되어주고, 믿음을 주게된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짐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대한 보답이다. 잊지말자.

(24.06.01)
한 아픈 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는 자신이 아픈지 전혀 모른다.
나도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워 무시도 많이하고 항상 무시를 해왔었다. 
근데 오래 전에 주님이 나에게 해주신 교훈을 기억한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어도 그 사람의 '히스토리'를 알면 이해하고 안타까워 기도하게 된다.

이번에도 똑같았다. 
참 이해하기 어렵고 미성숙하고 너무나 심한 자기중심적인 모습에 공동체를 위해서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할 때가 왔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자신을 너무 드러내고자 한다"며 비난하곤 했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실체는 달랐다.
그저 소속감을 원했던 것이다.
외로움이 두려워 '그룹'으로 도망쳐 온 것이었다.
자신이 뭐 하나 할 줄 모르더라도 어쨋든 '혼자'가 아니니까
 
그 마음을 깨닫고 나니 4년전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음 문을 굳게 닫고 평생을 혼자 살아가려고 했던 그 때..
누구하나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괜찮다며 착각했던 모습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는 혼자 매일 같이 울었던 '내가 만든 지옥'의 궁극체 속에 살아가던 나의 모습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잠잠히 기도할 때 주님께서 어떤 마음을 주신다..
"그 아이를..너가 품어주지 않을래? 너와 많이 닮아있지 않니? 그 아이를 통해 너를 사랑하는 법을 알려줄게"
"나참... 공동체에서 가장 어려운 아이를... 제가요? 저도 많이 아픈데요?"
"알아.. 아니까 하는 말이야 저 아픔이 너의 아픔이기도 하잖니?"
하....주님 참 어려운걸 또 맡기시네요.....


ps 24.06.08)
이전에 봤던 아픈 아이를 향해 주님께서 첫번째 장기 과제를 주셨다.

"그 아이의 존재 자체에 대한 칭찬과 공감, 격려를 해주어라"

실력에 대한 칭찬을 해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리고 착각의 위험도 있다.
어린 아이에게 칭찬을 해주는 모습 처럼
그 아이의 존재 자체에 대한 격려와 공감을 해주어야할것이다.
"외롭고 힘든시간 잘 버텨주어 고맙다. 두려움이 컸을텐데 먼저 손내밀어 주어 고맙다."
 
참 오랬동안 마음문을 닫고 살았을 때
그 속에서 제발 나좀 봐달라고 수 없이 외쳤다. 
무너진 내 자아를 질질 끌며 살아가는 지옥은 지독하게 너무 잘아는데
그 지옥이 다른사람에게도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거 같다.
지금까지 내가 그랬는데 이제서야 다른 아이의 외침이 들리기 시작했다. 
부디....서로 상처없이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잘 극복하고 그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부족한 성품을 잘 다스려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또 다시 교만해지지않고 내면을 잘 다스렸으면 좋겠다.

 

숨을 쉬는 오늘을 살고 싶다.

내일 행복을 모으기보다

과거 상처에 억눌리기보다

내일의 계획도 좋지만

어제의 추억도 좋지만

그냥 오늘을 살고싶다.

오늘의 교제 속에 지금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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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남들에게 좋아보이기위해 괜찮은척 했다.
괜찮아보여야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여야했다.
힘들지 않은척
슬럼프에 빠져도 빠지지않은 척
또 나 자신에대해 솔직하지 못했고, 나와 내 주변을 속이고 있었다.
이유는.... 소중한 사람을 잃기 싫다는 욕심과 두려움이 아닐까
그렇게 또 다시 속인 결과는... 처참했고, 절망이었다.
그 두려움이 모든것을 앗아갔고, 또 다시 지옥을 보게 한것이다.

왜..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할까
내 마음이 병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방치한채로....괜찮다고 생각한 것일까

 

"잘 지내고있냐?"

누군가가 형식적으로 물어보는 안부를

형식적으로 넘기지말고 진지하게 성찰을 해보라는 신호로 인식하자.

난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것일까?

 

괜찮아?

무심코 던지는 이 말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평소에는 괜찮은 척 바쁘게 살아가다가

괜찮냐는 한마디에 울컥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에는 무심코 넘겼을 그말이

그 한순간에 그동안 괜찮지 않았던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동안 너무 무거운 짐을 메고 살아왔던것을.

너무 큰 부담감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까지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탈진해 쓰러지기 직전까지 기다려야하니까

그전까진 자신마저도 그 상태를 알아차리긴 어려울테니까

 

하루를 마치고 안식처에 들어와

누군가는 맥주 한 잔,

누군가는 따뜻한 물에 몸을 맡기고,

누군간 침대 속에 파묻혀

그 하루를 감당하기 위해 무장했던 긴장들을 모두 털어내며

자신에게 되묻는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괜찮아?"

단순히 "오늘 하루도 고단했다..."로만 끝내버릴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랬고, 저것은 저랬으면...하는 배움으로 만들자.

 

그리고 괜찮지 않다고 느낄땐 더 솔직하고, 민감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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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에 순종이 없었다.
그냥 삭제가 되어있었고, 존재할 자리가 없어져 있었다.
그렇게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되어버렸다.
꿈이 내가 되어버렸고, 내 옆사람이 되어버렸고,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이상... 빛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계속 싸웠다.
"이해하자...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고, 감당해야 할 일이다."라는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주님 내가 왜 그래 야해요?,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거예요?
내 모든 세상을 무너뜨릴 만큼 큰 죄인 거예요?
난 이해가 되지 않아요 뭐가 그렇게까지 잘못인 건데요?
제가 책임을 지면 되는데 왜 저한테 기회조차 허락해주지 않으시는 건데요?"
이라는 마음으로 반항심이 가득했고, 원망으로 가득 메웠다.

그 상태는 부모님과의 관계 단절하는 마음과 얼추 비슷했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나면 그 이후부터 평생을 가시가 되어 날 괴롭힌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나에겐 그 가시가 불순종이었던 것이다.
불순종의 결과가 관계의 단절이었고, 가장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지옥을 맛보게 된 것이다.

죄는 그 자체로 죄일 뿐인데 내 기준대로 죄의 무게를 측정하고 있었다.
또 그 측정된 죄의 무게를 통해 주님과 타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님 이 정도면 괜찮죠? 주님도 이해해주시는 거죠?"
내가 내 멋대로 주님을 판단하고, 타협하고,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내 안에서 깽판을 치며 나를 병들게 하고 있었고, 주님과 멀어지게 하고, 죄악 가운데로, 지옥 가운데로 나를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넙죽 엎드리기로 했다.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냥 넙죽 엎드린다.
이제 다시 내 마음에 주님의 자리를 만들고 순종을 드린다.
회개한다. 가슴 찢어지게 회개한다.

죄송합니다 주님.
내가 나된것을 죄송합니다.
죄악 앞에서 주님을 욕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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