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장 24~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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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보니게 여자의 믿음(마 15:21-28)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시다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오늘은 두가지의 사건을 보여주신다.

첫번째는 좀 간단하지만 넙죽 엎드리는 절박함과 겸손함을 보인 어느 귀신들린 딸을 둔 '엄마 이야기'

두번째는 비교적 복잡한 귀먹고 말더듬는 자의 치유의 사건

 

첫번째 : 귀신 들린 딸을 둔 엄마의 절박함

은혜는 배고픈 자의 것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있다는것

정확히 나의 해석으로 돌려 표현을 하자면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자신이 심령이 가난한 것을 알고있는 자의 것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간곡히 부탁했을때만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은 아니다.

은혜는 우리삶의 패시브처럼 항상 부어주시고 계신다. 우리 삶 속의 산소처럼 너무 익숙해서 알아 차리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일뿐.

자신이 은혜에 목이 마르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간곡히 요청했을 때 '그것이 은혜다.'라고 알려주신다.

물론 오늘의 본문은 좀 특별한 은혜를 요청하고있다.

 

이방 그리스인의 여인이 자신의 딸을 귀신에게서 해방시켜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한다.

"예수님 제 딸에게서 귀신을 쫒아내어 주세요 제 딸이 많이 아파합니다."

"자녀로 먼저 베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네 알고있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들도 주인집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저에게 그 부스러기라도 허락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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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해하기쉽게 재해석을 하게된다.

"주님 우리에게도 밥 좀 주세요"

"미안하다. 이 밥은 우리식구들을 위한 것이다."

"네 암요 당연하죠 제가 그 밥그릇을 뺏겠다는 것이 아니라 혹여 먹고 남는것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네 믿음이 내게 족하다"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은혜에 대한 (자신을 개로 비유할 정도의) 겸손함과 간절함을 보셨다.

그정도로 자신의 자존심을 굽히는 일이라면 역시 엄마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말 허무맹랑한 소문에도 자신의 자존심을 굽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그만한 절박함을 보인것이다.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그만큼 간절했을것이다.

 

두번째 : 귀먹고 말더듬는 자의 굳이?스러운 주님의 치유의 역사

이 사건에대해서는 두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이 직전 사건에서는 굳이 행차하지않아도, 눈앞에 있지 않아도 치유의 역사를 보여주셨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주님께서 굳이 자신의 두 손을 이용하시고, 침을 이용하셨다.

그 귀 먹은 자의 믿음이 부족해서일까?

아마도 그에겐 예수님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을 이해하셨던 탓일까?

가장 합리적인 생각은 예수님께서 "너의 죄가 사하였다."라거나, "말을 해봐라"라는 그 말조차도 들을 수 없는 귀 먹은 자의 적절한 처방전을 행하셨던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 사람은 듣지못한다고해서 외톨이는 아니었다.

그 사람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람들이 그 사람을 예수앞에 데려다 놨으니..

좀 풀리지않는  의문점들.

또 주님께서 다른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 귀 먹은 자는 망설이지 않고 소문을 낸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귀 먹었던 자가 전혀 다른사람처럼 잘 듣고, 잘 말하는 모습을 보고 어찌 된 일인지 안 물어볼 수 없었을 테고 너무나 신난 이 사람의 마음으로는 이 사건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었을테니 당연히 예수님이 말하지 말라고 하셨던 경고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될것을 모르진 않으셨겠지. 아시는것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을 행하셨겠지.

그걸 알면서도 굳이 그 자에게 경고하셨던 것은....그렇다고 경고 안할수는 없고 하시기는 하셔야하셨겠지.

왜 굳이 경고를 하셨어야했을까...

밝혀지면 안되는 사건이었다면 굳이 꼭 행하셔야할 사건이었을까..

 보이셔야하셨던 사건을 이루신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 자가 안타까워서 행하신 사건일까..

 

풀리지않는 의문점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주님 저에게는 아직까지 예수님의 의도를 해석하기에는 너무나 어리석고 모르는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선한곳으로 인도하여주실 그 주님의 선하심과 우릴 향한 사랑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선한길로, 건강한길로, 좋은길로,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합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심령이 가난한자라는것을 잊지 않고 그 마음으로 주님앞에 엎드려 은혜를 간청하는 마음을 잊지않게 해주세요

죄인을 위하여 이땅에 오신 예수님. 우리는 병자이고, 죄인임을 잊지않게 해주세요.

교만한 마음으로 주님을 외면하고, 제 마음이 주님으로부터 떠나지 않고 은혜를 계속 갈급해하는 마음을 허락해주세요.

저의 어리고 어리석은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이 어리석은 마음을 이끌어주심으로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허락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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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다(마 12:9-14; 눅 6:6-11)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많은 무리가 나아오다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열두 제자를 세우시다(마 10:1-4; 눅 6:12-16)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1)가나나인 시몬이며
19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1.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 사건은 이전 큐티의 본문 마가복음 12장 1-8절의 내용(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르다)과 매칭이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자르는 모습을 바리새인들이 보고는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었던 그 사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지적을 듣고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려 또다시 안식일에 사람을 치유하는 일 가지고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 하셨던 것의 주님의 정확한 의미를 분별하고, 그 의도에 맞게 순종해야 할진대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자신들 나름의 논리를 적용하고, 그것에 따르지 않으면 시비 트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안식일인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하여 자신들의 논리로 변질시켜버린 것이다.
마치 이번 주 주일에 교회 가지 않으면 당장 지옥에라도 떨어질 것처럼 인식이 변질되어버린 우리들의 신앙 같다.

주님의 말씀과 인도하심에 내 나름의 논리를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혼자 멋대로 생각하고 결정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시선과 말씀을 기반으로 주님의 의도를 파악하자.

2.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손 마른 사람은 정말 부지런히 회당을 다녔던 것이다.
누구 하나 자신에게 눈길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자신의 기대와 고집을 가지고 언젠가 치유될 그날을 기대하며.
이 모습은 왜 꼭 날 보는 것같이 불쌍하게 느껴질까...
누구 하나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말 한번 걸어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나의 할 일을 하며 걸어왔던....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사람은 마음속에 포기하지 않는 기대와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부지런히 자신만의 제사를 지낸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꿈이자 절박한 희망이었겠지

나는 언젠가부터 그런 꿈을 포기한 채 미련을 버리고 있었다.
내 욕심이라며 내 욕심은 들어주지 않으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혼자 멋대로 판단하고 버리며 살아왔다.
내 필요를 내려놓고 주님께 집중하라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떠나서 그냥 주님께 집중하라는 것이었는데..
내 욕심인 것을 떠나서 내가 주님께 집중하고, 그것이 나를 더 좋게 이끌어준다면 주님이 알아서 주실 것을
나는 안 들어주실 수도 있으니까 일찌감치 체념하고 다닌 것이다.
그런 영혼이 없으니 열정마저도 식었을 테고 애초에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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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혼자의 시간을 보내게 해주시는 주님께 다시금 집중합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아니라

그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뒤로하고 그냥 주님께 집중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에 집중합니다.

이끄실 곳으로 나를 이끄시고, 그곳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하는 시선을 갖게 해주세요

주님의 말씀을 함부로 판단하고 결정해버리고 포기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시선으로 다시금 생각해보고 주님의 뜻을 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마가복음 2장 13~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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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를 부르시다(마 9:9-13; 눅 5:27-32)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 그의 집에 2)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3)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금식 논쟁(마 9:14-17; 눅 5:33-39)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르다(마 12:1-8; 눅 6:1-5)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1.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우리는 아프다는 것을 매우 인정하기가 힘든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있다.

그것이 육체적이건, 심리적이건.

육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땐 매우 우울하거나, 발악을 하기도한다.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차라리 육신이 아픈 것이 났다. 

심리적으로 아프다는 것은 더더욱 알아채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스스로 인지하기는 기적이자 축복과도 가까운 일이다. 더욱이 우리 한국이라는 나라는 심리적으로 아프다고하면 '내가 뭔가 이상한사람인가?'하는 자신의 가치를 무너뜨리면서 더더욱 인정하기가 힘든 시대이다. 결코 이상하지 않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내 자신이 가끔은 불쌍하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병든 자'를 비유하시며 죄인을 위하여 온 것이라고 하셨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일은 심리적인 아픔을 인정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어려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일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일로 생각하니까. 그러니 '자신을 죄인임을 인정하라'는 말이 당연히 거부감이 드는 일이고, 어쩌면 반감을 사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님은 과감하게 바리새인들에게 그 말을 던진다.

현시대적으론 새파랏게 어린 청년이 꼰대에게 싸움거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정확하겐 꼰대가 먼저 딴지(?) 시비(?)를 걸었지만..)

 

주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에게 관심이 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싶으셨던게 아닐까

그리고 그 죄인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너와 내가 함께하겠다."

사회적으로 박해 받는 세리와 죄인들.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함께하는 것.

그러니 자신이 죄인임을 망설이지말고 인정함으로써 나아오라는 분명한 사인이 되지않았을까.

그리고 바리새인들에게까지도 그런 메세지를 담아 말씀을 하셨던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들을 귀가 있는 자들에게만 들렸을 메세지겠지?

 

죄앞에서 누구보다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솔직해져야함을 잊지말자.

 

2.허물을 벗은 신앙 :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낡은 옷을 아무리 새로운 천으로 덧대도 그 낡은 것은 가려질뿐 없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겉으로 '척'을 해봐도 민낯을 드러나게 되면 그 낡은 모습들, 죄의 모습들이 다 드러날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눈썰미 좋은사람들에게는 가리는 것 자체부터 의미없는 것이다. 

결국엔 허영심 가득한 허세, 속빈 강정일 뿐인 것이고, 아무리 감춰봐야 얼마 지나지않아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될것이다.

 

또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된다는 것은 아무리 자신의 낡은 모습을 감춰 속인다 하더라도

그 속임으로 인해 또다른 낡음을 낳게 되는 말씀임을 깨닫게 하신다.

결국에 아무리 열심히 철저하게 '척'을 해봐야 결국에 실체는 드러나게 되어있고,

누군가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결국에 그 '척'들로 인하여 민낯이 드러나게 되어있음을 뜻한다.

 

나에게, 주님에게 솔직해야함을 잊지 않아야할것이다.

'척'하지 않는 솔직한 신앙을 간직하자.

 

3.본질 바로잡기 :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시험을 칠때는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매순간 시험의 연속이다.

우리는 모든 상황과 모든 말씀속에 숨어있는 주님의 의도를 파악해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순간 잊게되고, 그로 인하여 자꾸만 본질(주님의 의도)를 놓치며 살게된다.

주님이 주시는 시험의 의도를 바로 알게 되는 순간 그 시험의 공략법을 파악하게 되고,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믿게된다.

 

어려운 시험을 격는다고해서 주님을 원망하기보다 먼저 주님의 의중을 여쭙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주님의 의중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과 성장을 발견 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게 된다면 우리는 더욱 강인해지고, 더욱 자유로워지고, 더욱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될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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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앞에서 무엇을 감출수 있을까요

모든것을 다 아시고 모든것을 다 꿰뚫고 보시고 다 보고계시는 분인데 감추려는 것 자체가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으로써 또 자꾸만 아담과 하와처럼 숨으려 하고, 감추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죄악을 드러내시는 주님

그 죄를 빛가운데로 드러내시고 죄를 태워 나를 다시금 주님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나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드러내시고, 태우시고 주님앞으로 다시 나아올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인간의 본성에 의하여 다시 '척'하지 않는 신앙이 될거라고는 확신치 않고 오히려 저 자신을 믿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주님을 의지함으로 이겨나갈 수 있는것을 체험할 수 있었고, 이것을 잊지 않고 끝까지 의지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세요.

솔직하지 않고 자꾸만 숨으려는 나 자신을 주님앞에 무릎 꿇려놓고 회개합니다.

오직 빛이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매순간 주님이 주시는 시험 속에 주님의 의중을 여쭙고 참된 본질을 찾으며 주님을 의지하는 그런 신앙이 되게하시고, 그로 인해서 자꾸만 죄성이 올라와 감추려는 저 자신을 깨우치심으로 다시금 죄악가운데로 가지 않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여주세요.

 

감사합니다 주님.

본문 : 요한복음 9: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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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9:35-41)

의사에게 치료를 받기위해서는 그 병을 먼저 인정하는것이 순서입니다.

질병을 인지하여 진료를받고, 치료가 시작됩니다.

어떤 물리적인 충격이든, 내적 건강상의 문제든, 정신질환이든.

하지만 죄에대해서 인정하지 못하거나 치료의 필요성에대해서 부정한다면 의사도 치료를 해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죄를 주님앞에 먼저 인정함으로 시인하고 나의 우상들을 고백하며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죄를 너무나 사랑하고

주변사람의 인정과 성취감과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라는 우상을 너무나 사랑하는 죄인입니다.

이러한 마음들로 인해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순간순간의 죄악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저는 너무나 나약하고 힘없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주님의 자리를 뺏을순 없습니다.

우상들은 언제나 나를 배신하지만 주님은 주님의 계획에 나를 넣으시고 인도하시며 참된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니까요

주님만이 나의 참된 소망이자 새명이자 길입니다.

나의 모든 우상들을 무너뜨리시고 그위에서 저를 이끄소서...

 

민호기목사님의 십자가 전달자 찬양이생각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VBdALUiWMc

www.youtube.com/watch?v=5nFokmxVk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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