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다양한 직군이 있고, 다양한 세계관이 있다.
그 직군과 세계관을 다양하게 들여다 볼수록 나의 영역이 넓어짐을 항상 느낀다.
그게 곧 나의 지적 재산이 되고 깊이가 된다.
오늘도 3차례동안 60여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느낀 교훈이다.
정말 혼자 고립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깨지며 배워야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나 혼자서 내 과거를 돌아볼 때는 정말 세상 다 산것마냥 교만해지는데
또 다른 사람들이랑, 더 성숙하고 더 넓은 사람들이랑 대화하다보면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 속에 갖혀살아온건지 느끼게 되며 부끄러워지게 된다.
이렇게 각자 저마다의 사는 이야기를 듣고, 그 사는 이야기 속에서 책을 통해 배운점들을 나누다 보면 또 하나의 행복감을 넘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특히 "건포도 명상"이 가장 또 인상이
깊은 경험이 되었다.
평소에는 그냥 사소하게 지나가는 하나의 사소함이었을테지만
사소함을 새롭게 바라보고 관찰하는 경험을 통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심미감을 느끼게 되는 경험이었다.
매우 익숙한 어떤 것을 "화성에서 온 듯한 새로운 어떤 것"을 향한 시선으로 느끼는 것,
그리고 건포도를 손가락으로, 혀로 만지고 느끼고, 또 잘근...잘근...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감촉과 맛과 느낌을 세세하게 경험하게 되는건 처음이었다.
현실의 시간에 쫒기어서 이런 사소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된거는 매우 소중했고, 아름다웠다.
작년에 했다면 무심코 지나갔을테지만 "심미감"감각을 각성 시키고 나서 느끼는 사소한 아름다움은 매우 깊다.




(오늘의 두 모임을 통해서 같은 공통된 느낀점이 있어서 같은 내용을 첨부하겠습니다.)
"원시인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자연환경을조심스러워했습니다. 두려움을 품고 대했습니다. 이는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덤비는 현대인의 교만과 대조됩니다. … (중략) … 이러한점들에비추어보면 모르는게 많다는 사실을 알고 행동했던 원시인이 지금보다 더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_오종우 교수의 <예술 수업> 중에서
이 문구를 다시 재해석해보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거룩한 마인드다.
하지만 최근에 크리스천들이 보이는 모습들은 모두 자신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모습들이다.
이는 명백히 신앙이라기보다 이념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아무리 분명한 확신이 있다고 믿는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무너질수도, 더욱 견고해질 수 있는 연약한 개인적인 잣대를... 이런 이념을 신앙으로 착각하여 자신의 세계관을 자기 확신으로 가득 메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의 단절이 되고, 고립 될 수 밖에 없다. 기독교가 지금 현재 이런 상태로 느껴진다.
그러니 우리는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명심해야한다.
"나도 모를 수 있고, 틀릴 수 있고, 부족하다"는 것을.
이것을 인정하고서 타인의 생각을 들어보고, 그 세계관을 들여다보게 되면 나의 수준이 한층 더 높아진다.
나도 결국 누군가의 배움을 받아야하는 부족한 사람임을 잊지않고 겸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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